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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데밀

캐서린 데밀(Katherine DeMille, 본명: Katherine Paula Lester, 1911년 6월 29일 ~ 1995년 4월 27일)은 캐나다 출생의 미국 배우이다. 193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 후반까지 25편의 영화에 출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애 초기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에서 태어났다. 생물학적 아버지 에드워드 가브리엘 레스터(Edward Gabriel Lester)는 스코틀랜드 태생의 영어 교사였으며, 제1차 세계대전 중 캐나다 원정군 장교로 복무하다 1917년 비미 능선 전투에서 전사했다. 생물학적 어머니 세실 비앙카 베르타 콜라니(Cecile Bianca Bertha Colani)는 이탈리아계였으며, 로스앤젤레스의 병원에서 사망했다. 이후 고아가 된 그녀는 8세 때 고아원에서 영화 감독 세실 B. 드밀(Cecil B. DeMille)의 아내 콘스턴스 아담스 드밀(Constance Adams DeMille)에 의해 발견되었고, 1922년 드밀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경력

193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연극 무대를 통해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케이 마시(Kay Marsh)"라는 예명으로 엑스트라 활동을 하기도 했다. 첫 크레딧이 있는 역할은 1934년 MGM 영화 《비바 빌라!》(Viva Villa!)에서 로시타 모랄레스 역이었다. 이후 파라마운트 픽처스와 계약을 맺었으며, 1935년 양아버지 세실 B. 드밀이 연출한 대작 《십자군》(The Crusades)에서 프랑스의 앨리스 공주 역을 연기했다.

1936년 20세기 폭스와 계약을 맺고 《라모나》(Ramona), 《찰리 찬 앳 더 올림픽》(Charlie Chan at the Olympics) 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1941년 가족을 위해 잠정 은퇴했다가 1947년 남편 앤서니 퀸(Anthony Quinn)과 함께 출연한 《검은 황금》(Black Gold)과 양아버지의 작품 《정복되지 않는 사람들》(Unconquered)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마지막 크레딧 역할은 1949년 영화 《더 저지》(The Judge)였다.

개인사

1937년 10월 2일 배우 앤서니 퀸과 결혼하여 슬하에 5명의 자녀를 두었다. 첫째 아들 크리스토퍼는 2세 때 W.C. 필즈 소유지의 연못에서 익사 사고로 사망했다. 1938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195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남편 앤서니 퀸을 대신하여 남우조연상을 대리 수상하기도 했다.

앤서니 퀸의 부정행위로 인해 1965년 이혼하였으며, 이후에도 데밀(DeMille) 성을 유지했다.

사망

말년에는 애리조나주 투손으로 이주하여 딸 및 손주들과 함께 지냈다. 1995년 4월 27일 알츠하이머병으로 투손에서 사망하였으며, 향년 83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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