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유웨이(康有爲, 1858년 3월 19일 ~ 1927년 3월 31일)는 중국 청나라 말기부터 중화민국 초기에 걸쳐 활동한 사상가이자 정치인이다. 본명은 강조이(康祖詒)이며, 자는 광하(廣廈), 호는 장소(長素)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광동성(廣東省) 남해현(南海縣) 출신으로, 사람에 따라 '강남해(康南海)'라고도 불렸다.
캉유웨이는 공양학(公羊學)을 비롯한 전통 유학을 연구하는 한편, 당시 유럽의 근대화와 일본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및 입헌군주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고향에 사숙(私塾)인 만목초당(萬木草堂)을 열어 량치차오(梁啓超) 등의 제자를 배출하였으며, 1895년 진사(進士)가 되었다.
그는 청나라의 개혁을 주장하는 여러 상소를 올렸고, 1898년 광서제(光緒帝)의 지지를 받아 무술변법(戊戌變法, 백일변법)을 추진하였다. 변법자강책(變法自彊策)을 통해 과거 제도 개혁, 탐관오리 혁파, 경제 개혁 등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서태후(慈禧太后)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의 반발로 변법은 실패하였고, 캉유웨이는 량치차오와 함께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망명 이후 캉유웨이는 캐나다에서 보황회(保皇會)를 조직하여 입헌군주제를 옹호하고 혁명에 반대하였다. 이후에도 공화제 실시에 반대하며 입헌군주제를 고수하였다. 1917년에는 장훈(張勛)과 함께 선통제(宣統帝)를 복위시키려는 장훈복벽(張勛復辟, 정사복벽)을 시도하였으나, 4일 만에 돤치루이(段祺瑞)에게 진압되어 실패하였다.
말년에는 중국 전통문화 보존과 철학 연구에 몰두하다가 1927년 칭다오(靑島)에서 사망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신학위경고(新學僞經考)』, 『공자개제고(孔子改制考)』, 『대동서(大同書)』, 『일본변정고(日本變政考)』 등이 있다. 특히 『대동서』에서 그는 이상적인 대동사회(大同社會)를 구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캉유웨이는 량치차오와 함께 중국 근대 정치사상의 중요한 인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