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칼레의 시민

칼레의 시민(Les Bourgeois de Calais / The Burghers of Calais)은 14세기 백년전쟁(1337~1453) 당시 프랑스 북부 항구도시 칼레(Calais)에서 발생한 사건과, 이를 소재로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이 제작한 조각 작품을 가리킨다.

역사적 배경

1346년, 영국 왕 에드워드 3세(Edward III)가 이끄는 영국군은 크레시 전투에서 승리한 후 도버 해협을 마주한 프랑스의 전략 요충지 칼레를 포위 공격했다. 칼레 시민들은 11개월간 기근과 악조건 속에서도 완강히 저항했으나 결국 항복하게 되었다. 에드워드 3세는 처음에 칼레의 모든 시민을 처형하려 했으나, 측근들의 조언으로 조건을 변경하여 시민 대표 6명을 처형하는 대신 나머지 시민들의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칼레의 부유한 시민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aint Pierre)가 가장 먼저 자원했고, 뒤이어 고위 관료와 상류층 인사 5명이 동참했다. 이들은 에드워드 3세의 요구대로 맨발에 자루옷(거친 가운)을 걸치고 목에 밧줄을 두른 채 성문 열쇠를 가지고 영국군 진영으로 나아갔다. 이들은 처형될 운명이었으나, 임신 중이던 영국 왕비 에노의 필리파(Philippa of Hainault)가 왕을 설득하여 목숨을 구했다는 것이 전승되는 이야기이다.

역사적 진위 논란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 이야기가 후대에 과장되었거나 정치적·사회적 목적에 의해 재창조된 신화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칼레 항복을 기록한 당대의 문건 약 20여 점에는 시민 대표들의 행위가 항복을 나타내는 의례적 절차였다고 기술되어 있으며, 에드워드 3세가 처음부터 이들을 처형할 의도가 없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특히 19세기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이 사건은 외세에 저항한 애국적 영웅담으로 부각되었고, 프루아사르(Jean Froissart)의 연대기 기록이 대중적 감성을 자극하며 널리 퍼지게 되었다.

로댕의 조각 작품

1884년, 칼레 시는 오귀스트 로댕에게 이 여섯 시민을 기리는 조각상을 의뢰했다. 로댕은 10여 년에 걸친 작업 끝에 1895년 작품을 완성하여 칼레 시청 앞에 설치했다. 로댕은 이들을 영웅적이고 이상화된 모습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 두려움과 고뇌, 체념, 분노 등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각 인물은 서로 다른 표정과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어떤 이는 고개를 숙인 채 체념하고, 어떤 이는 분노에 찬 눈길을 보내며, 또 다른 이는 머리를 감싸 쥐고 공포에 떠는 모습이다. 이 작품은 현재 프랑스 칼레 시청 앞에 원본이 설치되어 있으며, 전 세계 여러 미술관에 주물 복제본이 소장되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서울 리움미술관(구 로댕갤러리)에 소장되어 전시된 바 있다.

의의

칼레의 시민 이야기는 사회 지도층이 지녀야 할 도덕적 의무와 책임,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대표적 사례로 널리 인용된다. 또한 독일 표현주의 극작가 게오르크 카이저(Georg Kaiser)가 1914년 이 소재를 바탕으로 희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