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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헤티 왕국

카헤티 왕국(조지아어: კახეთის სამეფო, 카헤티스 사메포)은 조지아 동부에 존재했던 중세 후기 및 근세 시기의 군주국이다. 카헤티 지방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수도는 초기에는 그레미, 이후에는 텔라비였다. 왕국은 1465년경 조지아 왕국의 3분할 과정에서 성립되어, 1762년 인접한 카르틀리 왕국과 통합되어 카르틀리-카헤티 왕국이 성립될 때까지 존속하였다. 다만 그 사이 몇 차례의 짧은 중단 기간이 있었다.

기원과 성립

카헤티 왕국의 성립은 15세기 중반 조지아 왕국의 내부 분열에서 비롯되었다. 조지아의 왕 게오르게 8세가 1465년 삼츠헤의 공작에 의해 생포되고 폐위되면서, 그는 카헤티 지역으로 물러나 그곳에서 독립적인 통치 체제를 구축하였다. 이후 1490년 조지아 왕국의 왕 콘스탄티네 2세는 게오르게 8세의 아들인 알렉산데르 1세를 카헤티의 왕으로 인정함으로써, 조지아 왕국의 3분할(카르틀리, 카헤티, 이메레티)이 사실상 확정되었다.

초기 카헤티 왕국은 다른 조지아 정치 체제와 달리 주요 외세의 침입과 내부 반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으며, 길란-셰마카-아스트라한을 잇는 비단길 무역에 참여하여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그레미, 자게미, 텔라비 등 상업 도시가 발전하였다.

외세의 간섭과 이란의 패권

16세기 이후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제국의 대립 속에서 카헤티 왕국은 이들 대제국의 영향권에 놓였다. 1555년 아마시아 조약으로 카헤티는 사파비 제국의 영향권에 속하게 되었으나, 지방 통치자들은 사파비 제국에 협력함으로써 상당한 자치를 유지하였다. 1589년 알렉산데르 2세는 러시아 차르에 대한 충성을 공식적으로 서약하기도 하였으나, 실질적인 동맹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605년 사파비 제국의 지시로 알렉산데르 2세가 무슬림으로 개종한 아들 콘스탄티네 1세에 의해 살해된 사건 이후, 카헤티의 상황은 급변하였다. 카헤티인들은 부친살해범을 거부하고 콘스탄티네의 조카인 테이무라즈 1세를 왕으로 옹립하였다. 이후 테이무라즈 1세의 통치(1605~1648년)는 사파비 제국과의 지속적인 충돌 속에서 진행되었다.

1614~1617년 사파비의 샤흐 아바스 1세는 카헤티를 반복적으로 침략하여 수만 명이 사망하고 10만 명 이상이 이란으로 강제 이송되었다. 이로 인해 카헤티의 인구가 크게 감소하고 도시가 황폐화되었다.

후기와 카르틀리와의 통합

1659년 카헤티인들은 집단 봉기를 일으켜 사파비의 유목민 정책에 저항하였다. 이후 카헤티 왕가는 이슬람으로의 전향 등을 조건으로 1703년경 사파비 제국의 승인 아래 왕위를 재건하였다.

1724~1744년에는 오스만 제국과 이란의 연속적인 점령을 겪었다. 카헤티의 왕자 테이무라즈 2세가 이란의 나데르 샤흐에게 협력한 결과, 그는 카르틀리와 카헤티 양쪽에서 권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테이무라즈 2세는 카르틀리의 왕으로, 그의 아들 에레클레 2세는 카헤티의 왕으로 승인되었다. 1747년 나데르 샤흐가 암살된 이후 두 군주는 실질적인 독립 통치자로 자리매김하였다.

1762년 테이무라즈 2세가 사망하자 에레클레 2세가 두 왕국을 계승하면서 카르틀리-카헤티 왕국이 성립되었다. 이는 근 3세기 만에 동조지아가 단일 왕국으로 통일된 사건이었다. 카르틀리-카헤티 왕국은 1801년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어 소멸하였다.

정치 체제와 사회

카헤티 왕국은 봉건군주제를 채택하였으며, 바그라티오니 왕조의 한 분파인 카헤티 왕가가 통치하였다. 공용어는 조지아어와 페르시아어였으며, 종교는 정교회 기독교를 비롯해 유대교와 시아파 이슬람도 공존하였다. 대부분의 존속 기간 동안 카헤티는 페르시아(사파비, 아프샤르 왕조 등)의 공납국이었으나, 간헐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다.

이 왕국은 현재의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러시아 영역에 걸친 지역에 존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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