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재능을 보였으며, 일찍이 여러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49년 '갓파 부기'(河童ブギウギ)로 데뷔하여 '슬픈 피리'(悲しき口笛)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10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인 못지않은 가창력과 표현력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미소라 히바리는 엔카, 재즈, 팝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폭넓은 음악 스펙트럼을 선보였다. 그녀는 생애 동안 1,500곡 이상의 음원을 발표하고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는 등 가수와 배우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전후 일본 사회에 희망과 위로를 전달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했으며, 일본인의 정서에 깊이 뿌리내린 국민 가수로 존경받았다. 1989년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민영예상(国民栄誉賞)을 수상했다.
말년에는 건강 문제로 고통받았으나, 투병 중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1989년 6월 24일 간질성 폐렴으로 52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그녀의 죽음은 일본 열도에 큰 슬픔을 안겼다. 미소라 히바리의 음악과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일본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녀의 노래는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