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미에시 베인(폴란드어: Kazimierz Bein, 1872년 2월 29일 ~ 1959년 6월 15일)은 폴란드의 안과 의사이자 에스페란토 운동가이다. 필명은 카베(Kabe)로, 에스페란토 문학사에서 '최초의 에스페란토 문체가'로 평가된다.
생애
카지미에시 베인은 1872년 2월 29일, 오늘날 폴란드 우치(Łódź) 인근의 시에르주니아(Sierżnia)에서 태어났다. 가족은 유대계였으나 가톨릭 신자였다. 아버지 알렉산데르 베인은 1863년 1월 봉기에 참여했다가 시베리아로 유배된 전력이 있었다.
젊은 시절 베인은 러시아 제국에 대항한 폴란드 독립 운동에 참여하여 체포 및 유배를 겪었다. 이로 인해 학업이 중단되었다가, 이후 카잔 대학교 의학부에서 수학하여 1899년 우등으로 졸업하였다. 바르샤바로 돌아온 그는 바르샤바 안과 연구소(Instytut Oftalmiczny)에서 근무하며 안과 의사로서 경력을 쌓았다. 1908년에는 동료들과 함께 폴란드 안과학회(Polskie Towarzystwo Okulistyczne)를 공동 창립하였고, 바르샤바 안과 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안과학 분야에서 다수의 학술 논문과 저서를 집필했으며, 아마추어 사진가로도 활동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바르샤바 봉기 당시에는 봉기군을 위한 안과 자문의로 활동했고, 전후에는 우치에서 의료 활동을 이어갔다. 1959년 6월 15일 우치에서 사망하였으며, 우치의 성 요제프 가톨릭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는 결혼하지 않았고 자녀도 두지 않았다.
에스페란토 활동
베인은 1887년 에스페란토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 이미 이 언어에 대해 알게 되었으나, 본격적으로 학습한 것은 1903년부터였다. 그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사전 없이 에스페란토 텍스트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동료 안과 의사이자 에스페란토 창시자인 루드비크 자멘호프(Ludwik Zamenhof)를 직접 방문하여 에스페란토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필명 '카베'(Kabe)는 자신의 이름 이니셜 K.B.의 폴란드식 발음에서 유래했다. 1904년 바츠와프 시에로셰프스키(Wacław Sieroszewski)의 소설 《빈곤의 밑바닥》(Dno nędzy)을 에스페란토로 번역하여 큰 명성을 얻었다. 1906년에는 에스페란토 아카데미(Akademio de Esperanto)의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주요 번역 작품으로는 볼레스와프 프루스(Bolesław Prus)의 역사 소설 《파라오》(La Faraono, 1907), 그림 형제의 《선별 동화집》(Elektitaj fabeloj, 1906), 이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Patroj kaj Filoj, 1909) 등이 있다. 1910년에는 최초의 에스페란토 단일어 사전 중 하나인 《에스페란토 사전》(Vortaro de Esperanto)을 출간하여 에스페란토 어휘의 안정화에 크게 기여했다.
베인의 에스페란토 문체는 간결하고 명료하며 불필요한 복합 동사 형태를 피하는 특징이 있어, 초기 에스페란토 문학의 산문 문체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원작 창작보다 번역이 언어 발전에 더 유익하다고 보아 거의 번역에만 전념했다.
에스페란토 운동 이탈과 '카베이'
1911년, 베인은 절정의 명성을 누리던 중 아무런 설명 없이 갑자기 에스페란토 운동을 떠났다. 20년 후인 1931년, 잡지 《Literatura Mondo》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에스페란토가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다는 점과,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이 언어를 충분히 구사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이탈은 에스페란토 공동체에 큰 충격을 주었고, 그의 필명 '카베'에서 파생된 에스페란토 동사 'kabei'(카베이)가 탄생했다. 이 동사는 "에스페란토 운동에서 활발히 활동하다가 갑자기 그리고 조용히 떠나다"라는 의미로, 오늘날까지 에스페란토 어휘로 사용되고 있다. 만년인 84세 무렵부터 다시 에스페란토에 관심을 보였다는 증언이 있으나, 운동에 본격적으로 복귀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