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에타누 벨로주(Caetano Veloso, 본명: Caetano Emanuel Viana Telles Veloso)는 브라질의 싱어송라이터, 기타리스트, 작가, 정치 운동가이다. 1942년 8월 7일 브라질 바이아(Bahia)주 산토 아마로 다 푸리피카상(Santo Amaro da Purificação)에서 태어났다. 그는 브라질을 대표하는 국민적 뮤지션으로 평가받으며, 국제적으로도 폭넓은 인지도를 지닌 인물이다.
생애
벨로주는 우체국 공무원이었던 아버지 호세 텔리스 벨로주(José Telles Veloso, 1901~1983)와 어머니 클라우디오노르 비아나 텔리스 벨로주(Claudionor Viana Telles Veloso, 1907~2012) 사이의 일곱 자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의 여동생은 역시 유명한 가수인 마리아 베사니아(Maria Bethânia)이다.
십대 시절 바이아주 주도 사우바도르(Salvador)로 이주하여 대학에 진학했으며, 이 시기 보사노바(bossa nova)와 주앙 지우베르투(João Gilberto)의 음악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1960년대 중반 음악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계기로 첫 음반 계약을 체결하였다.
트로피칼리아 운동
벨로주는 1960년대 후반, 지우베르투 지우(Gilberto Gil), 마리아 베사니아 등을 비롯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브라질 음악 운동인 트로피칼리아(Tropicália)의 설립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이 운동은 브라질 대중음악에 록, 사이키델릭, 아방가르드적 요소를 결합한 장르 융합적 실험이었다. 트로피칼리아는 연극, 시, 음악을 아우르는 복합 예술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정치적 박해와 망명
1964년 집권한 브라질 군부 독재 정권은 벨로주의 음악적·정치적 활동을 위협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1969년 그는 동료 음악가 지우베르투 지우와 함께 체포되었고, 이후 브라질에서 추방되어 런던에 정착해 약 2년간 체류하였다. 1972년 귀국한 이후 녹음과 공연 활동을 재개하였다.
음악적 성과
벨로주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브라질 국외에서도 인지도를 넓혔다. 그는 라틴 그래미 어워드 9회, 그래미 어워드 2회를 수상하였으며, 2012년 라틴 레코딩 아카데미(Latin Recording Academy)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다. 주요 대표곡으로는 1967년 발표된 〈Alegria, Alegria〉 등이 있다.
그의 음악적 영향으로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스(Amália Rodrigues), 콜 포터(Cole Porter),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 그리고 무엇보다 주앙 지우베르투가 언급된다. 음악 장르는 MPB(Música Popular Brasileira), 보사노바, 트로피칼리아, 사이키델릭 록, 포크 록 등으로 분류된다.
음반 활동
벨로주는 1967년 첫 음반 《Domingo》를 발매한 이후 수십 장의 스튜디오 음반과 라이브 음반을 발표하였다. 대표적인 스튜디오 음반으로는 《Caetano Veloso》(1968), 《Transa》(1972), 《Estrangeiro》(1989), 《Circuladô》(1991), 《Noites do Norte》(2000) 등이 있다. 또한 영화 《Hable con ella》(2002), 《Frida》(2002), 《Moonlight》(2016) 등의 사운드트랙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평가
벨로주는 브라질 대중음악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서양의 음악적 요소와 시적인 가사를 결합하여 MPB의 가능성을 확장한 인물로 평가된다. 브라질 국내에서는 "브라질의 밥 딜런"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는 음악가로서의 활동 외에도 저술 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적·정치적 활동을 지속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