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발라(히브리어: קַבָּלָה, Kabbalah)는 유대교 신비주의 사상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히브리어 어근 '카발(QBL)'에서 유래한 말로, 문자적으로는 '받음', '전수(傳授)', '전승'을 뜻한다. 전통적으로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신앙적 지혜, 곧 '구전 토라의 신비'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카발라는 신과 우주와 인간의 본질, 창조의 과정, 영혼의 구조 등에 관한 비밀스러운 지혜를 탐구하는 유대교 내의 밀교적 전통이다.
개념과 범주
카발라는 일반적으로 신의 존재 방식, 창조의 신비, 인간의 영적 역할 등을 주제로 하는 추상적·형이상학적 사상 체계로 이해된다. 학술적으로 볼 때 '카발라'라는 용어는 고대 이스라엘 시기부터 존재한 것으로 주장하는 유대 신비주의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도, 그리고 더 좁게는 중세기에 텍스트로 확립된 특정한 신비 사상 흐름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쓰인다. 현대의 역사학적 연구, 특히 게르솜 숄렘(Gershom Scholem)의 연구 이래로 학계에서는 '카발라'라는 명칭을 중세에 본격적으로 나타난 특정한 교리 체계를 지칭하는 데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적 기원과 발전
카발라의 기원은 유대교의 초기 신비주의 전통, 즉 메르카바 신비주의와 헤이칼롯 문헌 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중 특히 《세페르 예치라》(창조의 서)는 이후 카발라 사상의 형식적 원천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본격적인 카발라 문헌이 출현한 시기는 대략 12세기에서 13세기로, 당시 프랑스 남부(랑그도크)와 스페인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초기 주요 문헌으로 《바히르》가 있으며, 이후 유대 문화의 황금기를 누리던 스페인에서 13세기 말 모세 데 레온(Moses de León)에 의해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하르》가 카발라의 핵심 경전으로 자리 잡았다.
16세기에 이사크 루리아(Isaac Luria)는 카발라에 차원체계를 도입하여 '짐춤'(신의 수축), '셰비라'(그릇의 파쇄), '티쿤 올람'(세계의 회복) 등의 개념을 정립했다. 루리아식 카발라는 이후 18세기 하시디즘(신비주의적 경건주의)의 대중화를 통해 널리 확산되었다. 20세기에는 숄렘을 중심으로 한 학술적 연구가 유대학의 한 분야로 확립되었다.
주요 개념
카발라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세피로트'(Sefirot)이다. 이는 무한한 신(아인 소프, Ein Sof)이 창조 세계에 현현되는 열 가지 속성 또는 단계를 말한다. 세피로트는 왕관(케테르), 지혜(호크마), 이해(비나), 자비(헤세드), 힘(게부라), 아름다움(티페레트), 승리(네차흐), 위엄(호드), 기초(예소드), 왕국(말쿠트)으로 구성되며, 흔히 '생명나무'의 형태로 도식화된다. 카발라에서는 신을 본질적으로는 인간이 파악할 수 없는 절대적·초월적 존재로 보는 한편, 그 신이 세피로트를 통해 세상에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카발라의 또 다른 특징은 토라 해석에 관한 것이다. 카발라적 전통에 따르면 토라는 네 단계의 해석 수준을 지닌다: 문자적 의미(페샤트), 암시적 의미(레메즈), 랍비적 해석(데라쉬), 비밀스러운 영적 의미(소드). 이 중 가장 깊은 '소드'의 차원을 탐구하는 것이 카발라의 몫으로 간주된다.
그 외에도 카발라에는 회귀(길굴 네샤모트), 신의 이름과 히브리어 문자의 신비, 신비적 우주론 등이 포함된다.
전통 구분
학술적 연구에서는 카발라를 크게 세 갈래로 구분하기도 한다. 첫째는 신성의 구조를 이해하고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둔 '이론적(신지학적) 카발라'로, 《조하르》와 루리아의 체계가 이에 해당한다. 둘째는 명상과 신비적 합일을 목표로 하는 '명상적(엑스터시) 카발라'로, 아브라함 아불라피아가 대표적이다. 셋째는 주술적 목적을 지닌 '실천적 카발라'로, 유대교 내에서도 소수 엘리트에게만 허용된 소수의 전통이다.
유대교 외부로의 전파
르네상스 시기 이후 유대교 카발라의 문헌들은 기독교 세계와 서양 밀교 전통으로 유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유대교적 맥락과 분리되어 '기독교 카발라'와 '헤르메스 카발라'라는 별개의 혼합적 전통이 발전하였다. 이들 전통은 유대 카발라의 개념을 보편적 고대 지혜로 해석하면서 마법, 연금술, 점성술 등과 결합시켰다. 이 때문에 현대에서 '카발라'라는 용어는 유대교의 본래 전통과 구별되는 뉴에이지적·오컬트적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대의 연구와 관심
20세기 중반 이후 카발라에 대한 학술적 연구는 유대학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았다. 숄렘 외에도 모셰 이델(Moshe Idel), 엘리엇 울프슨(Elliot R. Wolfson), 아서 그린(Arthur Green), 요셉 단(Joseph Dan) 등의 학자들이 카발라의 다양한 전통을 연구하였다. 한편 1960년대 이후 서구에서 신비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대적 배경을 가진 다양한 단체들이 카발라를 보편주의적 관점에서 대중에게 소개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비판과 논쟁
카발라에 대해서는 유대교 내부에서도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 중세에는 합리주의적 유대 철학자들이 세피로트 교리가 신의 단일성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으며, 현대에는 정통파 유대교 내에서도 《조하르》의 저자와 권위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합리주의적 유대 사상가들은 카발라를 미신적 요소가 강한 것으로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이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카발라는 유대교의 역사적·문화적 유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종교학, 철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연구되는 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