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아어(Carian)는 인도유럽어족 아나톨리아어파의 루비크(Luwic) 하위군에 속하는 사멸 언어이다. 고대 소아시아 서남부, 즉 오늘날 터키 서부에 해당하는 카리아(Caria) 지역의 카리아인들이 사용했던 언어로,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계통과 분류
카리아어는 인도유럽어족 아나톨리아어파에 속하며, 같은 어파의 리키아어(Lycian), 밀리아어(Milyan)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루비아어(Luwian)와도 가까운 관계에 있으나 직접적인 후손 언어는 아니다. 루비아어, 카리아어, 리키아어 사이의 대응 관계가 직접적인 계승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언어 연합(sprachbund)의 영향에 의한 것인지는 학계에서 논쟁이 있다.
문자 체계
카리아어는 카리아 문자(Carian script)로 기록되었으며, 약 34~45개의 알파벳 부호로 구성되어 있다. 카리아 문자의 많은 부호들이 그리스 문자와 형태상 유사하지만, 음가는 일반적으로 크게 다르다. 카리아 문자 비문은 카리아 본토와 이집트 나일 삼각주 지역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카리아 용병들이 이집트 파라오를 위해 복무했던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자료의 분포
카리아어의 알려진 자료는 소규모이다. 이집트에서 약 170개의 비문이 발견되었으며, 카리아 본토에서는 약 30개가 발견되었다. 이집트의 멤피스(Memphis)에 거주하던 카리아인 공동체(카로멤피테스, Caromemphites)의 묘비 비문이 주요 자료이며, 카리아-이집트 이중 언어 비문과 카리아-그리스 이중 언어 비문도 일부 존재한다. 그 외에 아비도스, 테베, 아부심벨 등지의 낙서, 카리아 지역의 주화 명문, 고대 저자들이 인용한 카리아어 단어 등이 자료로 활용된다.
해독의 역사
20세기까지 카리아어는 완전히 미해독 상태였다. 문자 부호가 그리스 문자와 유사하다는 점 때문에 그리스어 음가를 적용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했고, 이로 인해 카리아어가 인도유럽어족이 아닌 언어로 잘못 분류되기도 했다. 1980년대에 이집트학자 존 D. 레이(John D. Ray)가 카리아-이집트 이중 언어 묘비 비문을 활용하여 문자 해독에 돌파구를 마련했다. 이후 디터 쉬러(Diether Schürr)와 이그나시오 J. 아디에고(Ignacio J. Adiego)의 연구를 거쳐 1993년경 '레이-쉬러-아디에고 체계'가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수용되었다. 1996년 카우노스(Kaunos)에서 발견된 새로운 카리아-그리스 이중 언어 비문이 이 해독 체계의 타당성을 확인하였다.
언어적 특징
카리아어는 다른 아나톨리아어파 언어들과 마찬가지로 주격, 대격, 속격 등 최소 세 가지 이상의 격을 가진 명사 굴절 체계를 지닌 것으로 확인된다. 카리아어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짧은 모음을 표기하지 않는 경향으로 인해 큰 자음군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그리고'를 뜻하는 단어는 'sb'로 표기되는데, 이는 밀리아어의 'sebe'와 대응한다. '아버지'는 'ted'로 표기되며 리키아어 'tedi-', 리디아어 'taada-'와 대응한다. 카리아어의 동사 형태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게 확인된 형태가 없으며, 문법적 분석이 완전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소멸
카리아 지역이 그리스인들의 식민화와 헬레니즘화 과정을 겪으면서 카리아어는 점차 그리스어에 흡수되어 소멸하였다. 카리아어는 기원전 1세기 또는 서기 초 무렵에 완전히 사멸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카리아어는 사멸 언어로 분류되며, ISO 639-3 코드는 'xcr'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