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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하인츠 슈넬링거

카를-하인츠 슈넬링거(Karl-Heinz Schnellinger, 1939년 3월 31일 ~ 2024년 5월 20일)는 독일의 전직 축구 선수로, 현역 시절 수비수로 활약했다.

생애 및 배경

슈넬링거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뒤렌(Düren)에서 출생했다. 1949년부터 지역 클럽인 SG 뒤렌 99에서 유소년 선수로 시작했으며,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 19세의 나이로 서독 국가대표팀에 데뷔하여 참가했다. 동년에 1. FC 쾰른에 입단하였다.

클럽 경력

슈넬링거는 1. FC 쾰른 소속으로 1961-62 시즌 독일 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같은 해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로 선정되었다. 1962년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3위에 올랐다. 1963년 이탈리아 세리에 A의 만토바로 이적하면서 독일 선수로서 해외 리그에 진출한 초기 사례 중 한 명이 되었다. 이후 AS 로마(1964-65, 코파 이탈리아 우승)를 거쳐 1965년 AC 밀란에 입단했다.

AC 밀란에서 9시즌 동안 200회 이상의 리그 경기에 출전하였으며, 1968-69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당시 유러피언컵) 우승을 포함하여 세리에 A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유러피언컵 우승 1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를 달성했다. 1974년 AC 밀란을 떠나 독일의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에서 한 시즌을 보낸 후 1975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국가대표팀 경력

슈넬링거는 1958년부터 1971년까지 서독 국가대표팀에서 47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4차례의 FIFA 월드컵(1958년, 1962년, 1966년, 1970년)에 출전하였으며, 이는 당시로서는 드문 기록이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 출전했으나 서독은 잉글랜드에 패배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는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그의 유일한 국가대표팀 득점은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준결승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나왔다. 후반 추가시간에 터뜨린 동점골로 경기는 연장전으로 이어졌으며, 이 경기는 '세기의 경기'로 불리게 되었다. 당시 독일의 방송 해설자 에른스트 후베르티는 그가 국가대표로 단 한 골도 넣은 적이 없었고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에 "Ausgerechnet Schnellinger!"(하필이면 슈넬링거!)라는 유명한 코멘트를 남겼다. 서독은 연장전 끝에 3-4로 석패했으나 3위 결정전에서 승리하여 3위를 기록했다.

플레이 스타일 및 평가

슈넬링거는 뛰어난 운동 능력과 강한 체력, 거친 태클을 바탕으로 한 수비수였다. 주 포지션은 좌측 수비수였으나 중앙 수비수, 최후방 수비수,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함을 갖추었다. 이탈리아에서 활약할 당시에는 그의 강력한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팬저'(Panzer, 전차)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전성기에는 자친토 파케티, 니우통 산투스, 실비오 마르솔리니와 함께 당대 최고의 좌측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개인 생활 및 사망

은퇴 후 슈넬링거는 이탈리아 밀라노 교외의 세그라테에 정착하여 사업가로 활동했다. 2024년 5월 20일, 밀라노의 산 라파엘레 병원에서 장기 투병 끝에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1958년 월드컵에 출전한 서독 선수들 중 마지막 생존자였다.

주요 수상 경력

    1. FC 쾰른: 독일 리그 우승 1회(1961-62)
  • AS 로마: 코파 이탈리아 1회(1963-64)
  • AC 밀란: 세리에 A 우승 1회(1967-68), 코파 이탈리아 1회(1966-67, 1971-72, 1972-73), 유러피언컵 1회(1968-69), 인터컨티넨탈컵 1회(1969), UEFA 컵위너스컵 1회(1967-68, 1972-73)
  • 서독 국가대표: FIFA 월드컵 준우승(1966), 3위(1970), 4위(1958)
  • 개인: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1962), 발롱도르 3위(1962), FIFA 월드컵 올스타 팀(1962), AC 밀란 명예의 전당 헌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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