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포르투나토 피에트로 폰티(이탈리아어: Carlo Fortunato Pietro Ponti, 1912년 12월 11일 ~ 2007년 1월 10일)는 이탈리아의 영화 프로듀서이다.
생애
카를로 폰티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마젠타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마젠타 시장을 역임했다. 밀라노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아버지가 근무하던 밀라노의 법률 사무소에서 근무하다가 영화 계약을 통해 영화 산업에 관여하게 되었다.
1940년 밀라노에서 영화 산업을 시작하여 마리오 솔다티 감독의 영화 《피콜로 몬도 안티코》를 제작했다. 이 영화는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성공을 거두었으나, 카를로 폰티는 나치 독일과의 관계를 파괴한 혐의로 수감되기도 했다. 1941년에는 룩스 필름의 제의를 수용하여 희극인 토토가 출연한 상업 영화를 제작하며 큰 성공을 기록했다.
1954년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길》(La Strada)의 제작을 담당하면서 가장 큰 예술적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 작품은 1956년 아카데미 국제영화상을 수상했다. 이후 《보카치오 70》(1962), 《이탈리아식 결혼》(1964), 《어제, 오늘, 내일》(1965), 《닥터 지바고》(1965) 등을 제작하며 큰 성공을 이어갔다. 《닥터 지바고》의 감독 데이비드 린은 1965년 골든 글로브상 극영화 부문을 수상했다. 또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욕망》(1966), 《자브리스키 포인트》(1970), 《여행자》 등의 제작을 담당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사생활
카를로 폰티는 1946년 줄리아나 피아스트리와 결혼하여 딸 구엔달리나 폰티와 아들 알렉스 폰티를 두었다. 1951년 미인 대회 심사위원으로 참가하여 단역 배우였던 소피아 라차로(훗날 소피아 로렌)를 만나 영화에 캐스팅시켰다.
1957년 멕시코에서 줄리아나 피아스트리와 이혼하고 소피아 로렌과 결혼했으나,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이혼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결혼은 1962년 무효 처리되었다. 이후 소피아 로렌, 줄리아나 피아스트리와 함께 프랑스로 이민을 갔고, 1966년 프랑스 시민권을 취득했다. 같은 해 줄리아나 피아스트리와 합법적으로 이혼한 후 소피아 로렌과 재혼했다. 소피아 로렌과의 사이에서 아들 카를로 폰티 주니어(지휘자)와 에도아르도 폰티(영화 감독)를 두었다.
주요 제작 영화
- 《길》(1954)
- 《율리시스》(1954)
- 《두 여인》(1960)
- 《경멸》(1963)
- 《이탈리아식 결혼》(1964)
- 《닥터 지바고》(1965)
- 《욕망》(1966)
- 《해바라기》(1970)
- 《자브리스키 포인트》(1970)
- 《카산드라 크로싱》(1976)
카를로 폰티는 2007년 1월 10일 스위스 제네바의 병원에서 폐질환으로 향년 94세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