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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돌치

카를로 돌치(이탈리아어: Carlo Dolci, 1616년 5월 25일 ~ 1686년 1월 17일)는 이탈리아의 바로크 시대 화가이다. '카를리노 돌치'(Carlino Dolci)라고도 불린다. 주로 피렌체에서 활동했으며, 매우 정교하고 세밀하게 완성된 종교화로 알려져 있다.

생애

카를로 돌치는 1616년 5월 25일 토스카나 대공국의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그의 외조부모가 화가였다고 전해진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으며, 이른 나이에 화가 야코포 비냘리(Jacopo Vignali)의 도제로 들어갔다. 열한 살 때 성 요한의 전신상과 아기 예수의 머리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어머니의 초상화를 그려 주목을 받으면서 피렌체를 중심으로 많은 의뢰를 받게 되었다.

돌치는 다작하는 화가는 아니었다. 그의 전기 작가인 필리포 발디누치에 따르면, 돌치는 "발 하나를 그리는 데에도 몇 주를 들이곤 했다"고 한다. 이러한 세심한 작업 방식 때문에 대형 프레스코화 작업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는 주로 성스러운 주제를 다루었으며 작품의 크기도 대체로 소형이었지만, 몇 점의 실물 크기 그림도 남겼다. 또한 같은 구도를 여러 버전으로 반복 제작하는 경향이 있었다.

돌치는 독실한 신앙심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매년 고난주간마다 가시관을 쓴 구세주의 반신상을 한 점씩 그렸다고 한다. 1682년에는 '파 프레스토'(fa presto, '빨리 그리는 사람')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화가 루카 조르다노가 단 다섯 시간 만에 자신이 몇 달 동안 완성할 분량의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큰 낙담에 빠졌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654년에 테레사 부케렐리(Teresa Bucherelli)와 결혼하여 일곱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의 딸 아녜세 돌치(Agnese Dolci) 역시 화가가 되어 아버지의 작품을 모사하기도 했다. 그녀의 작품 중 《예수께서 빵을 들고 축복하시다》와 《성모자》는 1905년에 출간된 《세계의 여성 화가들》(Women Painters of the World)에 수록되었고, 《빵과 포도주의 성별》은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돌치는 1686년 1월 17일 피렌체에서 사망했으며, 피렌체의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성당의 가문 묘지에 안장되었다.

미술사적 평가

카를로 돌치의 작품 세계는 볼로냐·로마 바로크의 웅장한 양식, 강렬한 색채와 빛의 효과, 역동적인 감정 표현과는 거리가 있다. 그는 피렌체 공식 회화의 오랜 전통 속에서 개별 인물을 학문적 엄격성 아래 두는 피렌체 화파의 특징을 유지했다. 미술사가 루돌프 비트코버(Wittkower)는 신심 어린 이미지라는 측면에서 돌치를 로마의 사소페라토(Sassoferrato)에 대응하는 피렌체 화가로 설명했다. 아일랜드의 미술사학자 매슈 필킹턴은 그의 붓질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단정하다"고 평가하면서도, 그림에 지나치게 많은 노동을 들이고 살빛을 실제 살결처럼 보이기보다 상아처럼 표현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주요 작품

대표작으로는 《성 세바스티아노》, 피렌체의 《네 복음사가》, 《빵을 떼는 그리스도》, 《오르간을 연주하는 성 체칠리아》,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된 《동방박사의 경배》, 《책 읽는 성 카타리나》, 피티 궁전에 있는 《십자가형을 앞두고 기도하는 성 안드레아》(1646) 등이 있다. 그는 열여섯 살의 나이에 이미 아이놀포 데 바르디의 초상화를 완성했다. 또한 1656년에는 몬테바르키의 산탄드레아 체나노 교회를 위해 대형 제단화를 제작했다. 그의 작품은 우피치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빈 미술사 박물관, 국립서양미술관 등 여러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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