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프리들란더(Carl Friedländer, 1847년 11월 19일 ~ 1887년 5월 13일)는 독일의 병리학자이자 미생물학자이다. 그는 19세기 후반 세균학(bacteriology) 분야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특히 폐렴의 세균성 원인 규명에 기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생애
카를 프리들란더는 1847년 11월 19일, 슐레지엔(Silesia) 지방의 브제크(Brieg, 현재 폴란드 브제크)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브레슬라우(Breslau), 뷔르츠부르크(Würzburg), 취리히(Zürich), 베를린(Berlin)에서 의학을 공부하였다. 1869년부터 의사로 활동하였으며, 1874년부터 1879년까지는 베를린의 샤리테(Charité) 병원에서 병리학자 루돌프 피르호(Rudolf Virchow)의 조수로 근무하였다.
학문적 업적
프리들란더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1882년 폐렴의 세균성 원인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급성 섬유소성 폐렴으로 사망한 환자의 폐에서 피막을 가진 구균(capsulated micrococcus)을 분리·관찰하고, 이를 폐렴의 원인균으로 보고하였다. 이 세균은 이후 그의 이름을 따 '프리들란더균(Friedländer's bacillus)'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오늘날에는 클렙시엘라 폐렴균(Klebsiella pneumoniae)으로 분류된다. 다만, 이후 연구에서 이 균이 전형적인 폐렴의 주요 원인균은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다.
또한 그는 1876년 폐쇄성 혈전혈관염(thromboangiitis obliterans)을 처음으로 기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86년에는 의학 분야에 앰플(ampoule)을 도입한 것으로도 기록된다.
그는 병리학 분야에서도 활발히 활동하여, 1877년 '상피 증식과 암(Über Epithelwucherung und Krebs)'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고, 1882년에는 '의학 및 병리해부학적 검사를 위한 현미경 기법(Mikroskopische Technik)'이라는 저서를 출간하였다. 이 저서는 여러 판을 거듭하며 영어와 러시아어로도 번역되었다.
사망
프리들란더는 자신이 발견한 전염성 유기체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호흡기 질환으로 투병하다가, 1887년 5월 13일 티롤 후백국(County of Tyrol)의 메라노(Merano)에서 3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의의
카를 프리들란더는 19세기 후반 세균학의 발전에 기여한 중요한 인물로, 그의 이름은 의학사에서 '프리들란더균'이라는 명칭을 통해 오늘날까지도 기억되고 있다. 그의 연구는 폐렴의 병인(病因) 이해와 세균학적 진단법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