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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루트비히 폰 할러

카를 루트비히 폰 할러(Karl Ludwig von Haller, 1768년 8월 1일 ~ 1854년 5월 20일)는 스위스의 법학자, 정치가, 정치철학자이다. 베른에서 태어났으며, 시인이자 박식가였던 알브레히트 폰 할러(Albrecht von Haller)의 손자이고, 베른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고틀리프 에마누엘 폰 할러(Gottlieb Emanuel von Haller)의 아들이다.

할러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단호한 반대자로 알려져 있으며, 대표 저서인 《국가학의 복원》(Restauration der Staatswissenschaft, 1816~1834, 전 6권)을 통해 혁명적 국가 개념을 거부하고 재산 소유와 자연적 종속 관계에 기초한 정치 질서를 옹호하였다. 이 저서의 제목은 빈 회의 이후 '복원 시대'(Restoration period)라는 명칭의 유래가 되었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은 《법철학 강요》 제258항에서 이 저서를 강하게 비판하였다. 또한 이 책은 1817년 바르트부르크 축제(Wartburg Festival)에서 불태워지기도 하였다.

할러는 초기에는 입헌 자유주의에 관심을 보였으나, 프랑스 혁명과 헬베티아 공화국의 수립 이후 점차 혁명 원리에 대한 강력한 반대자로 전향하였다. 그는 베른 구체제가 무너진 이후 헬베티아 공화국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여 출판물이 압수되고 투옥을 피해 도피해야 했다. 이후 빈에서 전쟁 평의회 서기관(1801~1806)으로 활동하였고, 1806년 베른으로 소환되어 신설된 고등교육기관에서 헌법학 교수로 임용되었다. 1814년 구 귀족 체제가 복원되자 베른 대평의회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821년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베른에서의 직위를 상실하였다. 이후 파리로 이주하여 1824년 외무부에서 외교관 후보생들에게 헌법 및 국제법을 교육하는 임무를 맡았다. 1830년 7월 혁명 이후 졸로투른(Solothurn)으로 이주하여 정치 저널에 기고하고, 1833년 졸로투른 대평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어 교회 문제에 중요한 영향을 행사하였다. 1844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로부터 성 실베스터 훈장을 받았다.

할러의 정치 이론은 사회계약론과 인민주권 개념을 거부하고, 국가를 재산 소유와 개인적 권력 관계에서 비롯된 자연적·사적 관계의 확장으로 보았다. 그는 주권과 독립을 동의어로 사용하며, 국가 권력이 본질적으로 토지 소유(세습재산국가), 군사력(군사국가), 또는 교리적 권위(영적 국가/신정국가)의 세 가지 원천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세습재산국가'(patrimonial state) 개념은 이후 막스 베버(Max Weber)의 사회학에서 차용되었다. 그는 또한 로마법이 유럽 법학에 미친 영향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였다.

할러의 사상은 프로이센의 보수주의 사상가 게를라흐(Gerlach)와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Frederick William IV) 정부에 영향을 주었으며, 현대에는 일부 우파 자유지상주의(우파 자유지상주의) 이론가들에 의해 재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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