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다하(Qardaha, 아랍어: القَرْدَاحَة)는 시리아 북서부, 라타키아가 내려다보이는 시리아 해안 산맥의 산악 지대에 위치한 마을이다. 행정 구역상 라타키아주에 속하며, 해발 약 420m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시리아 중앙 통계청에 따르면 2004년 기준 인구는 8,671명이다.
지리 및 기후
카르다하는 고온 여름 지중해성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 Csa)를 보인다. 산악 지역에 위치하지만 고도는 350~500m로 높지 않으며, 삼림이 우거져 있고 강수량이 많다. 7월 평균 최고 기온은 약 29°C, 1월 평균 최고 기온은 약 7°C이다. 연간 강수량은 약 828mm이며, 1월에는 평균 3일간 눈이 내린다. 이러한 기후와 자연 환경은 농업에 유리하여 사과, 오렌지 농장 및 담배 재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역사
문헌에 따르면, 카르다하 주민들은 칼비야 부족 연합의 후손이며, 이 마을은 부족 연합의 주요 중심지 역할을 했다. 오스만 제국 후기인 1840년에서 1880년 사이에 당국과 해안 산맥의 알라위파 부족들 간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1854년에는 라타키아 산자크의 오스만 총독이 카르다하에 기반을 둔 부족원들과의 충돌 중 사망하기도 했다.
20세기 중반까지 카르다하에는 상당한 수의 기독교 인구가 있었으나, 대부분의 기독교 가문들은 주요 해안 도시로 이주하였다.
1970년, 하페즈 알 아사드가 정권을 잡은 이후 카르다하는 도시 지위를 부여받았으며, 정부의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담배 가공 공장 건설 등 국가 투자로 인해 1970년에서 1981년 사이에 카르다하는 연평균 4.9%의 인구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이는 해안 지역 평균(3.8%)을 상회하는 수치이다.
정치적 중요성
카르다하는 아사드 가문의 전통적인 고향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70년부터 2000년까지 시리아를 통치한 하페즈 알 아사드 전 대통령이 이곳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들 바샤르 알 아사드 역시 이 가문 출신이다. 아사드 통치 기간 동안 정부는 카르다하와 라타키아 및 주변 지역에 막대한 투자를 하였으며, 마을에는 많은 호화로운 빌라가 건설되었다. 과거 마을 중심에는 하페즈 알 아사드의 거대한 동상이 있었고, 바셀 알 아사드와 하페즈 알 아사드의 묘소 또한 이곳에 위치해 있었다.
시리아 내전 이후
시리아 내전 기간 동안 카르다하는 반군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2013년 4월 반군의 로켓 포격을 받았으며, 같은 해 8월에는 반군 전투원들이 카르다하 인근까지 남진하기도 했다. 2024년 12월 아사드 정권이 종식된 후, 2024년 12월 11일 반군 전투원들이 하페즈 알 아사드와 바셀 알 아사드의 무덤에 불을 질렀으며, 많은 아사드 충성파들이 카르다하로 피난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