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코룸(몽골어: ᠬᠠᠷᠠᠬᠣᠷᠣᠮ, Хархорум, 영어: Karakorum)은 13세기 몽골 제국의 수도였던 도시이다. 현대 몽골어 발음으로는 '하르호린' 또는 '하르허링'에 가깝다. 현재 몽골의 우브르항가이 주에 위치하며,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오르혼 계곡 문화 경관'의 일부로 등재되어 있다.
어원
'카라'는 튀르크계 및 몽골계 언어로 '검은'을 의미하고, '코룸'은 '큰 성' 또는 '요새'를 뜻한다. 따라서 카라코룸은 '검은 성'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중국 측 기록에서는 '화림(和林)'으로 불렸다.
역사
카라코룸이 위치한 오르혼 강 유역은 흉노, 돌궐, 위구르 제국 등 여러 유목 제국의 중심지였던 지역이다. 칭기즈 칸은 1220년경 이 지역을 중국 원정의 본거지로 삼았으며, 그의 셋째 아들인 우구데이 칸(오고타이 칸)이 1235년 이곳에 성벽과 궁전을 갖춘 정식 수도로 조성하였다. 이후 몽케 칸 시기에는 궁전이 확장되고 대형 불탑 사원이 건설되었으며, 파리의 금세공인 기욤 부셰가 제작한 '은나무' 분수대가 궁전 내에 설치된 것으로 기록에 전한다.
1254년 이 도시를 방문한 프란치스코회 선교사 루브루크의 윌리엄은 카라코룸에 대해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그에 따르면 이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네 방향으로 네 개의 문이 있었고, 이슬람교도와 중국인을 위한 두 개의 고정된 상가 거리, 12개의 이교도 사원, 두 개의 모스크, 하나의 네스토리우스 기독교 교회가 있었다고 한다. 이는 몽골 제국의 종교적 관용 정책을 반영한다.
쿠빌라이 칸이 1260년 몽골 제국의 대칸에 오른 후 수도를 현재의 베이징 인근인 대도(大都)로 옮기면서 카라코룸은 점차 쇠퇴하였다. 이후 원나라가 멸망하고 북원 시기에 일시적으로 다시 수도 기능을 하였으나, 1388년 명나라 군대의 공격으로 도시가 크게 파괴되었다. 16세기에는 인근에 에르덴 조 사원이 세워지면서 카라코룸의 석재가 사원 건축에 재사용되었다.
고고학적 발굴
카라코룸의 정확한 위치는 1889년 니콜라이 야드린체프에 의해 확인되었다. 1933~34년 D. 부키니치의 초기 발굴을 시작으로, 1948~49년 소련-몽골 합동 발굴, 2000~2004년 독일-몽골 합동 발굴이 진행되었다. 발굴을 통해 포장 도로, 벽돌과 어도비 건물, 바닥 난방 시스템, 금속 가공 시설, 중국 및 중앙아시아産 도자기와 동전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고려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거울이 발견되어 당시 동서 교역의 범위를 보여준다.
현황
현재 카라코룸 유적지 인근에는 몽골 최초의 불교 사원인 에르덴 조 사원(1586년 건립)이 위치해 있으며, 카라코룸 박물관이 운영 중이다. 몽골 정부는 2020년대 들어 울란바토르의 과밀 문제 해소를 위해 카라코룸 지역에 50만 명 규모의 신도시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