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라(이탈리아어: Carrara)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마사카라라도에 위치한 도시이자 코무네(기초자치단체)이다. 피렌체에서 북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카리오네 강 연안에 자리잡고 있으며, 인구는 약 6만 3천 명(2016년 기준)이다. 도시의 표어는 라틴어로 "Fortitudo mea in rota"("나의 힘은 바퀴에 있다")이며, 이는 로마 시대 이래로 이어져 온 대리석 선적 산업을 상징한다.
어원
'카라라'라는 이름은 켈트어 또는 리구리아어의 'kar'(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며, 라틴어 'carrariae'(채석장)를 통해 파생된 것으로 본다.
역사
이 지역에는 기원전 9세기부터 아푸안 리구레스인들이 거주한 정착지가 있었다. 현재의 도시는 기원전 2세기 로마인들이 리구리아를 정복한 후, 대리석 채석장 노동자들의 거주를 위해 건설한 자치구에서 기원하였다. 로마 시대 이래로 카라라는 대리석 채석 및 조각 공정과 깊이 연관되어 왔으며, 대리석은 마그라 강 하구의 루니 항구를 통해 수출되었다.
중세 시대에는 비잔티움, 롬바르드족, 루니 주교의 지배를 거쳤다. 13세기 초에는 도시 국가로 발전하였고, 이후 피사 공화국, 루카, 피렌체, 밀라노의 비스콘티 가문 등 여러 세력의 지배를 받았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는 마사와 카라라가 합쳐져 마사에카라라 공국을 형성하였으며, 이후 모데나 공국의 일부가 되었다. 나폴레옹 통치를 거친 후 이탈리아 통일 시기에는 주세페 마치니의 혁명 활동 중심지였다.
19세기 말, 카라라는 특히 채석장 노동자들 사이에서 이탈리아 내 아나키즘(무정부주의)의 온상이 되었다. 1885년 벨기에와 스위스에서 추방된 혁명가들이 이곳에 이탈리아 최초의 아나키스트 조직을 세웠다. 1968년에는 국제 아나키스트 연맹(IAF)이 카라라에서 창설되었다.
경제와 문화
카라라의 가장 중요한 산업은 카라라 대리석(Carrara marble)의 채석이다. 카라라 대리석은 흰색 또는 청회색을 띤 고급 대리석으로, 고대 로마 시대부터 조각과 건축 장식에 널리 사용되었다. 로마의 판테온과 트라야누스 원주,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모두 카라라 대리석으로 제작되었다. 아푸아 알프스 산맥에는 최소 650개의 채석장이 있으며, 이곳은 지구상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 많은 대리석을 생산한다. 국제지질학연합(IUGS)은 카라라 대리석을 세계 석재 자원 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주요 명소
- 카라라 대성당(Duomo, 12세기): 성 안드레아에게 헌정된 로마 가톨릭 성당으로, 내외부가 카라라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 두칼레 궁전(키보 말라스피나 궁전, 16세기): 현재 미술 아카데미로 사용된다.
- 산 프란체스코 성당(1623~1664년):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자매 도시
프랑스 그라스, 독일 잉골슈타트, 세르비아 크라구예바츠, 폴란드 오폴레, 아르메니아 예레반, 중국 윈푸(云浮)시와 자매 결연을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