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스 전투 (1702년)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1701-1714) 중인 1702년 8월 23일부터 9월 15일까지 영국과 네덜란드 연합 함대가 스페인 카디스 항구를 점령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한 상륙작전이자 해군 작전이다. 이 전투는 전쟁 초기에 동맹군(영국, 네덜란드)이 이베리아 반도에 교두보를 마련하고 프랑스-스페인 해상 무역로를 차단하려는 중요한 시도였다.
조지 루크(George Rooke) 제독이 이끄는 연합 함대와 오몬드 공작(Duke of Ormonde) 제임스 버틀러가 이끄는 지상군이 스페인 마르퀴스 데 비야다리아스(Marqués de Villadarias)가 지휘하는 방어군에 맞섰다. 결과적으로 동맹군은 카디스를 점령하는 데 실패했으나, 이 철수 과정에서 발생한 비고만 해전에서 중요한 승리를 거두게 된다.
배경 1701년 발발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은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자신의 손자인 필리프 5세를 스페인 왕위에 앉히면서 유럽 강대국들의 세력 균형이 깨질 것을 우려하여 발생했다. 영국, 네덜란드, 오스트리아로 구성된 동맹군은 프랑스의 확장을 저지하고 스페인 영토 내의 주요 항구를 확보하여 작전 기지로 삼는 동시에, 대서양을 통한 스페인 식민지 무역 및 프랑스-스페인 은 수송을 방해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카디스는 스페인의 주요 대서양 항구이자 해군 기지였으며, 아메리카 대륙과의 무역 중심지로서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았다. 동맹군은 카디스를 점령함으로써 스페인 본토에 안정적인 교두보를 마련하고, 스페인 해상 무역을 장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전개 조지 루크 제독은 50척 이상의 전함과 수많은 수송선으로 구성된 대규모 영국 및 네덜란드 연합 함대를 지휘했으며, 오몬드 공작 제임스 버틀러는 영국, 네덜란드, 오스트리아군으로 이루어진 약 14,000명의 지상군을 이끌었다.
1702년 8월 23일, 연합군은 카디스 북쪽의 로타(Rota)와 푸에르토 데 산타 마리아(Puerto de Santa María)에 상륙하여 이들 도시를 점령했다. 그러나 지상군 병사들의 규율 부족과 광범위한 약탈이 발생했는데, 특히 가톨릭 성당과 수녀원에 대한 약탈은 현지 스페인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동맹군에 대한 지지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카디스 시 자체는 강력한 요새화로 무장되어 있었고, 스페인 수비대는 마르퀴스 데 비야다리아스의 지휘 아래 효과적으로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연합 해군은 항구 봉쇄 및 포격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지상군 역시 도시를 점령하기 위한 진격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다. 스페인 수비대는 연합군이 점령한 주변 지역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게릴라전을 펼치며 동맹군을 괴롭혔다.
지상군의 약탈로 인한 사기 저하, 수비군의 강력한 저항, 보급 문제, 그리고 가을 폭풍이 다가오면서 루크 제독과 오몬드 공작은 9월 중순 철수를 결정했다.
결과 및 영향 카디스 점령 실패는 동맹군에게는 전략적 실패이자 사기 저하를 가져왔다. 이베리아 반도에 주요 거점을 확보하려는 초기 목표 달성에 실패함으로써, 동맹군은 스페인 본토를 직접 점령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철수하는 과정에서 루크 제독의 함대는 1702년 10월 23일 스페인 비고만(Vigo Bay)에서 서인도 제도로부터 돌아오는 프랑스 호송대와 스페인 보물선단을 발견했다. 연합군은 비고만 해전에서 이 선단을 성공적으로 격파하여 막대한 전리품을 획득하고 프랑스-스페인의 해상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이 비고만 해전에서의 승리는 카디스 전투의 실패를 어느 정도 만회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전쟁의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비록 카디스 자체는 점령하지 못했지만, 보물선단의 파괴는 프랑스와 스페인 양국에 심각한 재정적 타격을 입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