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금오산성(漆谷 金烏山城) 은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일대에 위치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용된 석축 산성이다. 1986년 12월 11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67-2호로 지정되었다.
위치 및 개요
금오산성은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구미시 남통동, 칠곡군 북삼읍에 걸쳐 있는 해발고도 976m의 금오산(金烏山) 정상부에 위치한다. 조선시대에는 선산부(善山府)에 속하였으며, 경상도의 요충지에 위치한 주요 관방시설(關防施設)이었다. 금오산성은 금오산성(金鰲山城) 또는 금오산성(金吾山城)으로도 표기되었다.
축조 시기와 연혁
금오산성은 고려시대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말에는 인근 고을의 백성들이 왜구를 피해 들어가는 입보처(立保處)로 사용되었으며, 성 안에는 군기와 군량을 보관하는 군창(軍倉)이 있었다.
조선 태종대인 1410년(태종 10)에 본격적으로 수축되었다. 1450년(세종 32)에는 양성지(梁誠之)가 변란 대비 방책 가운데 경상도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금오산성을 지목하였고,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금오산석성(金烏山石城)의 현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시기에는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졌다. 1595년(선조 28) 도체찰사(都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이 금오산성에 체찰사의 근무처인 체부(體府)를 개설하였다. 금오산성은 인동의 천생산성(天生山城)과 함께 큰 진(鎭)으로 조성되었으며, 배설(裵楔)이 선산부사로서 축성을 주관하였다. 정유재란(1597) 때에도 이원익이 다시 금오산성에 들어가 지켰다.
병자호란 이후인 1639년(인조 17)에는 경상도관찰사 이명웅(李命雄)의 건의로 선산부사 이각(李恪)이 외성(外城) 축조를 주관하여 성곽이 크게 확장되었다.
1675년(숙종 1)에는 선산부가 독립 진이 되면서 금오진(金烏鎭)이 설치되었고, 3품 무관을 별장(別將)으로 두었다. 1728년(영조 4) 무신란(戊申亂) 당시에는 금오진의 군병이 동원되기도 하였다.
고종대인 1868년(고종 5)에 마지막으로 수축되었으며, 이 공사를 기념하는 금오산성중수송공비(重修頌功碑)가 현재까지 남아 있다.
구조와 형태
금오산성은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을 갖춘 이중 산성이다. 고려 말에 처음 축조된 부분은 산 정상을 둘러싼 테뫼식(山頂式) 산성이었으며, 둘레는 약 1,800m(1,440보)였다. 성 안에는 세 개의 연못, 한 개의 시내, 네 개의 샘이 있어 물이 풍부하였다.
인조대에 북쪽 계곡을 따라 포곡식(包谷式) 외성이 신축되면서 기존 산성은 내성이 되었다. 내성의 둘레는 약 2.7km, 외성의 둘레는 약 3.5km 이상으로, 전체 성벽 길이는 약 6.2km에 이르는 대규모 산성이다.
내성에는 남문(대장문, 大楊門)과 서문(건성문, 建成門)이 있었고, 외성으로 이어지는 중문이 있었다. 외성에는 북쪽으로 난 대혜문(大惠門)과 암문(暗門)이 있다. 성벽 위에는 여장(女墻)과 사혈(射穴)이 설치되어 방어 기능을 갖추었다. 성 안에는 해운사(海雲寺)·만승사(萬勝寺)·진남사(鎭南寺) 등의 사찰과 여러 건물지가 남아 있다.
지정 현황
금오산성은 1986년 12월 11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67-2호로 지정되었으며, 지정 면적은 76,104㎡이다. 현재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에서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