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얀비에호(스페인어: Chillán Viejo)는 칠레 중남부에 위치한 도시이자 코무나(기초 자치 행정 구역)이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뉴블레주(Ñuble) 디기인 현(Diguillín Province)에 속하며, 인접한 도시인 치얀(Chillán)과 함께 역사적으로 긴밀한 연관을 맺어 온 지역이다.
지리와 인구
치얀비에호의 총 면적은 약 291.8㎢이며, 해발 고도는 약 124m이다. 2002년 인구 조사 기준 인구는 22,084명(남성 10,791명, 여성 11,293명)이었으며, 이 중 약 85.3%인 18,827명이 도시 지역에 거주하고 나머지는 농촌 지역에 분포하였다. 2017년 인구 조사에서는 총인구가 30,907명으로 집계되었다. 1992년과 2002년 사이 인구는 약 32.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역사
치얀비에호의 역사는 16세기 스페인 식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565년 페드로 데 비야그라의 원정 당시 산 일데폰소(San Ildefonso)라는 이름의 스페인 요새가 이 지역에 건설되었다. 이후 1579년 총독 로드리고 데 키로가의 명령으로 도시 건설이 추진되었고, 1580년 6월 25일 마르틴 루이스 데 감보아가 '산 바르톨로메 데 치얀 이 감보아'(San Bartolomé de Chillán y Gamboa)라는 이름으로 도시를 창설하였다.
이 도시는 건설 이후 수차례의 침략과 자연재해를 겪었다. 1599년 쿠랄라바 전투(Disaster of Curalaba) 이후 마푸체족의 공격으로 파괴되었으며, 1655년에는 마푸체족과 페우엔체족의 압박으로 주민들이 다시 일시적으로 도시를 떠나야 했다. 1657년에는 지진으로 인해 도시가 붕괴되기도 하였다. 1751년 5월 25일 발생한 지진은 옛 콘셉시온을 파괴함과 동시에 치얀강의 대규모 범람을 일으켜 이 도시에도 큰 피해를 입혔고, 이로 인해 2년 뒤 도시는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게 되었다.
치얀비에호는 칠레 독립 전쟁 시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813년 7월 15일부터 8월 12일까지 이어진 치얀 공방전(Siege of Chillán)이 이 지역에서 벌어졌다. 1835년 2월 20일 지진으로 도시가 크게 파손된 이후, 대부분의 주민들은 북동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으로 이주하여 오늘날의 치얀(Chillán) 도시를 형성하게 되었다.
주요 인물
치얀비에호는 칠레의 독립 영웅인 베르나르도 오히긴스(Bernardo O'Higgins, 1778년 출생)의 출생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1607년 출생한 작가 겸 군인 프란시스코 누녜스 데 피네다 이 바스쿠냔(Francisco Núñez de Pineda y Bascuñán) 역시 이곳 출신이다.
행정
치얀비에호는 칠레의 제3급 행정 구역인 코무나로서, 4년마다 직접 선거로 선출되는 알칼데(시장)와 시의회에 의해 통치된다. 치얀비에호 출신 주민의 명칭은 남성의 경우 '치얀베하노'(Chillanvejano), 여성의 경우 '치얀베하나'(Chillanvejana)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