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리히 조약
개요 취리히 조약(Treaty of Zurich)은 1859년 11월 10일, 오스트리아 제국, 프랑스 제국, 사르데냐 왕국 사이에 체결된 평화 조약이다. 이 조약은 제2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사르데냐-오스트리아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시킨 문서이다.
배경 및 체결 과정 1859년 6월, 솔페리노 전투에서 프랑스-사르데냐 연합군이 오스트리아군에 승리한 후,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와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요제프 1세는 7월 11일 빌라프란카 휴전 협정을 맺었다. 취리히 조약은 이 휴전 협정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국제법적으로 공식화하기 위해 취리히에서 열린 외교 회담의 결과물이다.
주요 내용 조약은 세 가지 개별적인 협정(프랑스와 오스트리아 간, 프랑스와 사르데냐 간, 그리고 삼국 간 협정)으로 구성되었으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영토의 이전: 오스트리아 제국은 롬바르디아 지역의 대부분을 프랑스 제국에 할양하기로 합의하였다. 프랑스는 이를 다시 사르데냐 왕국에 양도하였다. 다만, 전략적 요충지인 만토바와 페스키에라 요새는 오스트리아의 영지로 남았다.
- 베네치아의 지위: 베네치아(베네토) 지역은 조약 체결 이후에도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토로 유지되었다.
- 이탈리아 연방 구상: 교황을 명예 의장으로 하는 이탈리아 연방(Italian Confederation)의 창설을 제안하였다. 이는 이탈리아 내 여러 국가를 하나의 연합체로 묶으려는 시도였으나, 실제로는 이행되지 않았다.
- 권리 복구: 중부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대공국, 모데나 공국, 파르마 공국에서 추방된 통치자들의 복위가 논의되었으나, 이 역시 실질적인 강제력을 갖지는 못했다.
역사적 의미와 결과 취리히 조약은 사르데냐 왕국이 롬바르디아를 확보함으로써 이탈리아 통일(리소르지멘토)을 향한 중요한 외교적 성과를 거두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베네치아가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남게 되고, 중부 이탈리아의 병합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음으로써 이탈리아 통일 운동가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이후 1860년 중부 이탈리아 국가들이 주민 투표를 통해 사르데냐 왕국으로의 병합을 결정하면서 취리히 조약에서 명시되었던 통치자 복위 및 연방 구성안은 사실상 파기되었으며, 이는 1861년 이탈리아 왕국 선포의 밑거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