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숙왕(忠肅王, 1294년 8월 6일 ~ 1339년 5월 11일)은 고려의 제27대 국왕이다. 초명은 도(燾), 휘는 만(卍), 자는 의효(宜孝)이며, 몽골 이름은 아라트나시리(Aratnashiri)이다. 원나라에서 내린 시호는 충숙(忠肅)이며, 공민왕이 올린 시호는 의효대왕(懿孝大王)이다.
생애
충숙왕은 제26대 국왕 충선왕과 원나라 출신 의비 예쉬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강릉대군(江陵大君)에 봉해졌으며, 세자였던 형 왕감(王鑑)이 사망한 후 충선왕의 후계자가 되었다. 1313년(충선왕 5년) 충선왕이 양위함에 따라 즉위하였다.
재위 기간은 크게 두 시기로 나뉜다. 첫 번째 재위는 1313년부터 1330년까지이며, 두 번째 재위(복위)는 1332년부터 1339년까지이다. 이는 원나라의 간섭과 사촌인 심양왕(瀋陽王) 왕고(王暠)의 왕위 찬탈 시도 등으로 인한 것이다.
1320년(충숙왕 7년), 사촌인 심양왕 연안군 왕고가 충숙왕이 주색과 사냥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는다고 원나라 조정에 참소하였다. 이로 인해 충숙왕은 원나라에 5년간 억류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왕인(王印)까지 압수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1325년에야 고려로 귀국할 수 있었다. 이후 충숙왕은 보위를 심양왕에게 양위하려 하였으나 신하 한종유(韓宗愈) 등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1330년 아들 왕정(후일의 충혜왕)에게 양위하고 원나라에 가서 부마 상주국 일수왕의 호를 받았다. 그러나 어린 충혜왕이 수렵과 유희를 일삼는 등 행실이 좋지 않아 원나라의 명으로 1332년 복위하였고, 1339년 사망할 때까지 재위하였다.
가족 관계
충숙왕의 아버지는 충선왕이며, 어머니는 의비 예쉬진이다. 왕비로는 복국장공주(이린지진), 조국장공주(금동), 경화공주(바얀쿠투), 공원왕후 홍씨(명덕태후), 수비 권씨가 있다. 아들로는 충혜왕(제28대), 용산원자, 공민왕(제31대)이 있다. 충혜왕(1315~1344)과 공민왕(1330~1374)은 모두 공원왕후 홍씨 소생이다.
시대적 배경
충숙왕의 재위 시기는 원나라의 간섭이 고려 내정에 깊숙이 침투하던 시기였다. 원나라와의 혼인 관계(부마국 체제) 아래에서 왕권이 제약을 받았으며, 친원 세력과의 갈등, 심양왕의 왕위 찬탈 시도 등으로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었다.
기타
충숙왕의 치세 중이던 1333년, 교황 요한 22세가 충숙왕에게 서한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서한은 현존하지 않으나 필사본이 남아 있다. 서한에는 충숙왕이 고려 내 기독교 신자들을 잘 대해주어 감사하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고려에 소수 기독교 신자(네스토리우스교 또는 가톨릭교도로 추정)가 존재하였음이 확인된다. 능호는 의릉(毅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