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봉의산성(春川 鳳儀山城)은 대한민국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소양로1가 일원, 춘천의 진산(鎭山)인 봉의산(鳳儀山, 해발 300.7m)에 있는 고대 산성이다. 1979년 5월 30일 강원특별자치도의 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었으며,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에서 지정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산성의 둘레는 약 1,280m에 이르며, 평면 형태는 부정형(不定形)이다. 상부 능선을 따라 자연 지세를 최대한 활용하여 축성된 포곡식(包谷式) 석축 산성으로, 성벽은 편마암 계통의 자연석을 장방형으로 다듬어 모맞추어 바른층쌓기 방식으로 내탁식(內托式) 쌓기하였으며, 퇴물림쌓기 기법이 나타난다. 성벽 높이는 붕괴로 인해 일정하지 않으나 5~6m 내외이며 지형에 따라 다르다.
축성 시기에 관해서는 문헌과 발굴 결과가 복합적으로 제시된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673년(신라 문무왕 13) 수약주(首若州) 주양성(走壤城) 축성 기사와 관련하여, 이 산성이 주양성의 실체로 지목되기도 한다. 2004년 강원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 결과 산성 내 건물지에서 6세기 후반~7세기 초엽에 해당하는 신라토기가 출토되어, 최초 조영 시기가 신라 통일기 이전으로 소급될 가능성이 고고학적으로 제기되었다. 발굴조사에서는 총 18개소의 건물지가 확인되었으며, 3개소의 건물지가 화재로 인해 일시 폐기된 양상이 확인되었고, 나말여초~고려 중기의 기와류, '서면(西面)', '면관(面官)' 등의 명문기와, 토기류, 자기류, 금속류, 중국 송나라 동전 등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문헌 기록으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봉산고성(鳳山古城)'이라는 명칭과 함께 둘레 2,463척, 높이 10척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에는 1217년(고종 4) 거란족의 침입으로 안찰사 노주한(盧周翰)이 이곳에서 전사하였다고 전하며, 『고려사절요』에는 1253년(고종 40) 몽골군의 4차 침입 당시 춘천의 민·관·군이 이 산성에 들어가 항전하였으나 장기 포위로 식량과 식수가 부족하여 소와 말의 피를 마시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산성이 함락되면서 대부분의 군·관·민이 전사하거나 자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임진왜란 때는 강원도 조방장(助防將) 원호(元豪)의 활동 지역이었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도 격전지였다.
원형은 오랜 시간 훼손되어 1991년에 105m, 1993년에 40m 등 일부 구간이 복원되었다. 산성 내에는 1983년 6월 2일에 세워진 '봉의산 순의비(殉義碑)'가 있어, 몽골군 항전 당시 순절한 무명 선열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봉의산성은 삼국시대 신라 산성의 축성 기법을 보여줄 뿐 아니라 춘천의 우두산성(牛頭山城)과 함께 신라의 춘천 지역 진출 시기에 전략적 주요 거점성으로 운영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고려 후기 거란과 몽골 침입 시 입보용(入保用) 산성으로 활용된 항전 유적지로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