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追伸/追申) 은 편지나 문서의 본문을 마친 뒤에 추가로 덧붙여 적는 내용의 머리에 쓰는 말이다. 한자어 '追伸'는 '뒤쫓다(追)'와 '펴다/늘이다(伸)'의 결합으로, '뒤에 덧붙여 말한다'는 뜻을 지닌다. '追申'으로도 표기하며, 영어의 'postscript'(P.S.)에 해당한다.
어원 및 용법
'추신'은 본래 편지를 다 쓰고 나서 미처 적지 못한 내용이 생각났을 때, 처음부터 다시 쓰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말미에 덧붙이는 관행에서 비롯되었다. 종이가 귀했던 과거에는 특히 실용적인 방법이었다. 현대에 와서는 이메일, 온라인 게시물, 블로그 등에서도 사용되며, 단순한 추가 기재 외에 강조하고 싶은 내용을 일부러 추신에 배치하여 효과를 높이는 용법으로도 쓰인다. 격식 있는 문서에서는 추신 내용을 너무 길게 쓰지 않는 것이 관례로 여겨진다.
역사적 배경
추신의 개념은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서신 말미에 추가 내용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현대에는 전자 매체의 발달로 본문 수정이 기술적으로 쉬워졌으나, 글의 흐름을 해치지 않으면서 여담이나 추가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추신(樞臣) — 고려시대 중추원(中樞院)의 재상급 관원
'추신'은 위의 '追伸'과는 별개로, 고려시대 중추원에 속한 재상급 관직을 가리키는 역사 용어이기도 하다. '추밀(樞密)'이라고도 불렸다.
개요
고려 성종 10년(991년)에 중추원이 설치되었고, 현종 2년(1011년)에 그 구성과 조직이 정비되었다. 추신은 군사기밀(군기, 軍機)에 관한 정사를 관장하였으며, 숙위(宿衛)와 왕명 출납을 담당한 3품 승선(承宣)과는 구별되는 상위 조직이었다. 중서문하성의 재신(宰臣)과 더불어 '재추(宰樞)' 또는 '양부재상(兩府宰相)'으로 불리며, 국가 중대사를 회의·결정하는 합좌기구인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을 운영하였다.
구성
추신은 종2품 판중추원사 1인, 중추원사 2인, 지중추원사 1인, 동지중추원사 1인, 정3품 중추원부사 2인, 첨서원사 1인, 직학사 1인 등 총 9인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들을 '추칠(樞七)'이라 불렀다. 고려 전기에는 3품 이상의 실직(實職)을 가진 특정인이 추신을 겸직하는 형태로 운영되었고, 후기에는 녹관(祿官)으로 전환되었다.
변천
고려 후기 무신집권기와 원 간섭기를 거치며 재추의 수가 크게 늘어나 14세기 후반에는 80여 명에 이르렀고, 이로 인한 폐단을 막기 위해 소수의 재추로 구성된 '내재추(內宰樞)'가 운영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 중추원이 중추부로 개편되면서 그 기능은 병조에 이관되었고, 추신은 당상관의 명예·우대직으로 성격이 변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