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 미술(抽象美術, abstract art)은 대상의 구체적인 형상을 재현하지 않고 점·선·면·색채 등 순수한 조형 요소만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미술의 한 흐름이다. 1910년경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 미술 사조로, 현실 세계의 가시적 대상을 모방·재현하는 전통적 회화 방식에서 벗어나 형태와 색채 자체가 지닌 독자적 표현력을 중시한다.
어원 및 개념
'추상(抽象)'은 한자어로 '뽑을 추(抽)'와 '형상 상(象)'을 써서, 사물의 본질적인 특징만을 추출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 'abstract art'는 라틴어 'abstrahere(분리하다, 떼어내다)'에서 유래하였다. 추상 미술은 구체적 대상에서 형태를 분리·단순화하거나, 아예 대상 자체를 배제하고 조형 요소만으로 작품을 구성한다.
역사
추상 미술의 태동은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0년 모리스 드니가 "회화란 전쟁터의 말이나 나부이기 이전에 질서를 가진 색채로 덮여진 평면이다"라고 말한 것은 회화가 재현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선언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 야수파(Fauvism)는 색채의 해방을, 입체파(Cubism)는 사물의 해체와 재구성을 시도하며 추상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최초의 순수 추상화는 러시아 태생의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가 1910년에 그린 수채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칸딘스키는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대상의 재현 없이 색과 형태만으로 내면의 정신적 울림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1910~1920년대에는 여러 추상 운동이 전개되었다.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는 쉬프레마티슴(Suprematism)을 주창하며 순수 기하학적 형태로 화면을 구성하였다. 네덜란드에서는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이 신조형주의(Neoplasticism)를 통해 수평과 수직의 선, 삼원색과 무채색만으로 보편적 조형 질서를 추구하였다. 러시아에서는 구성주의(Constructivism)가 전개되어 미술을 건축·디자인 등 생활 전반으로 확장하려 하였다. 1919년 발터 그로피우스가 설립한 바우하우스(Bauhaus)는 이러한 추상 조형 이념을 종합적으로 교육하고 실천한 기관으로, 이후 현대 디자인과 미술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미국에서 추상 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은 물감을 캔버스에 떨어뜨리거나 뿌리는 행위 자체를 중시하였고,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색면 추상(Color Field Painting)은 거대한 색면을 통해 정서적 울림을 전달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유럽으로 역수입되어 앵포르멜(Informel) 운동을 낳았다.
분류
추상 미술은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나뉜다.
-
기하학적 추상(차가운 추상): 말레비치의 쉬프레마티슴,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로 대표된다. 최소한의 기하학적 형태와 순수 색채를 사용하여 이성적이고 보편적인 조형 질서를 추구한다. 이후 디자인과 건축 분야에 큰 영향을 주었다.
-
서정적 추상(뜨거운 추상): 칸딘스키로 대표되며, 직관과 감정에 의한 자유로운 표현을 중시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추상 표현주의와 앵포르멜로 이어졌다.
한국에서의 전개
한국의 추상 미술은 1930년대 중반 일본에서 유학하던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 해방 이후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는 앵포르멜 계열의 추상이 유행하였고, 1970년대에는 단색화(Dansaekhwa)가 '한국적 모더니즘'으로 주목받으며 국제적 위상을 얻었다. 19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추상 미술의 열기는 다소 식었으나, 다양한 형식으로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의의
추상 미술은 20세기 초 모더니즘 미술의 가장 혁신적인 발견 중 하나로, 미술이 반드시 대상을 재현해야 한다는 전통적 규범에서 예술을 해방시켰다. 색채, 형태, 선, 질감 등 조형 요소 자체가 독립적인 표현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였으며, 이후 현대 미술 전반의 기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