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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배

최현배(崔鉉培, 1894–1970)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활동한 대한민국의 국어학자이자 국어운동가이다. 호는 외솔이며, 본관은 경주, 출생지는 경상남도 울산(현 울산광역시)이다.

생애

최현배는 1894년 10월 19일 울산에서 태어났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뒤 고향의 일신학교에서 신식 교육을 받았고, 1910년 상경하여 한성고등학교(후에 경성고등보통학교로 개칭)에 입학하여 1915년 졸업하였다. 같은 해 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 문과에 입학하여 1919년 졸업하고, 1922년 일본 경도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하여 교육학을 전공하였다. 「페스탈로치의 교육학설」이라는 논문으로 1925년 졸업하고, 계속하여 그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1926년 4월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학교) 교수로 취임하여 1938년까지 재직하였으나, 흥업구락부사건으로 파면되었다. 1941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문교부(현 교육부) 편수국장을 두 차례 역임하였고, 1954년 이후 연희대학교(연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문과대학 학장과 부총장을 지냈다. 1961년 정년퇴임 후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로 추대되었으며, 1964년부터 2년간 부산 동아대학교 교수로 재직한 바 있다. 1970년 3월 23일 사망하였다.

학문적 업적

최현배의 국어학 연구는 1910년 봄, 일요일마다 보성중학교에서 열린 조선어강습원에서 주시경(周時經)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그의 국어학 분야 업적은 『우리말본』과 『한글갈』로 집약된다.

『우리말본』은 1937년에 온전한 책으로 출판되었으며, 주시경 이래의 문법연구를 계승·발전시켜 20세기 전반기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 저술로 평가된다. 이 책은 소리갈·씨갈·월갈로 나누어 국어의 문법 체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당시에는 이를 능가할 문법서가 없다고 평가될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한글갈』(1941)은 한글 연구의 체계화를 시도한 업적으로, 역사편에서는 한글 제정의 동기와 경위, 한글 문헌에 대한 해설, 한글 연구의 역사를 다루고, 이론편에서는 한글 창제 이후 없어진 글자들의 음가를 추정하여 다루었다.

국어운동 활동

최현배는 한글전용과 풀어쓰기 이론을 발표하고 『글자의 혁명』(1947), 『한글의 투쟁』(1958), 『한글 가로글씨 독본』(1968) 등의 저서를 통해 이 운동의 이론적 지침을 제공하였다. 또한 국어정화를 주장하면서 일본어 찌꺼기를 몰아내는 우리말도로찾기운동을 전개하였다. 현행 각종 교과서에서 한글만으로 가로쓰는 체재를 확립한 일 또한 그의 업적으로 꼽힌다.

교육학 및 민족운동 분야에서도 『조선민족 갱생의 도』(1930), 『나라 사랑의 길』(1958), 『나라 건지는 교육』(1963) 등을 저술하였다.

활동 및 상훈

최현배는 1949년 한글학회 이사장에 취임하여 20년간 한글학회를 이끌었고, 1949년 한글전용촉진회 위원장, 1957년부터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사·부회장·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1954년 학술원 회원에 선출되었고, 1955년 제1회 학술원공로상을 수상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1967년 5·16민족상 학예부문 본상을 받았으며, 1970년 사망 당시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그의 학문과 유지는 한글학회를 중심으로 한 학자들에 의해 계승되었으며, 그의 사상을 기리는 모임인 외솔회가 1970년에 창립되어 기관지 『나라사랑』을 발간하고, 해마다 국학연구와 국어운동에 뛰어난 사람에게 외솔상을 시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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