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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화

최지화(崔志化, 일본식 이름: 鐵原志化, 1884년? ~ 1950년?)는 구한말, 대한제국, 일제강점기의 장로교 목사이다.

생애

평안남도 안주군 출생으로, 안주 성내교회 선교사에게 전도받아 개신교에 입교하였다. 평양의 숭실학교 중등부와 숭실전문학교를 각각 1911년과 1917년에 졸업하였다. 1918년부터 약 2년간 조선국민회에 가담하여 활동하였으며,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계해 활동한 기록이 있다. 1919년 안주읍교회에서 장로가 되었고,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뒤 1924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안주 중앙교회, 평양 연화동교회의 목사로 재직하였다.

중일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가 이어지던 1941년,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에서 최지화는 제30대 회장에 선임되었다. 총회장 재임 중 평양신사 참배를 인솔하였고, 궁성요배와 국가 봉창을 우선하는 방식으로 총회 창립 기념식을 진행하였다. 또한 태평양전쟁 지원을 위한 '조선장로교도애국기' 헌납 운동 등에 관여하였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옥사한 주기철 목사가 평양노회에서 파면될 당시, 당시 평양노회장이던 최지화가 파면 절차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복 후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 목회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고 평양신학교 교수로 부임하였다. 한국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조선기독교신학교가 폐교되고 개신교 목회자들이 체포되는 과정에서 최지화도 살해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사망 일시와 경위는 확인되지 않는다.

사후

3·1 운동 전후 조선국민회 및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공로로 196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그러나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고, 이후 친일 행적이 확인되어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 서훈이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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