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현선생묘(崔益鉉先生墓)는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관음리에 소재한 조선 후기 학자이자 항일 의병장인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의 묘소이다. 1982년 8월 3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따라 기존의 문화재 지정번호 체계가 폐지되면서 충청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최익현은 본관이 경주이고 자는 찬겸(贊謙), 호는 면암(勉菴)이다. 어려서부터 유학을 공부하여 철종 6년(1855)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는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탄핵하여 유배를 당하기도 하였고, 을사조약 체결에 항의하는 격렬한 상소를 수십 차례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06년에는 74세의 나이로 항일 의병을 일으켰으나 체포되었고, 일본 쓰시마섬(對馬島)에 구금된 상태에서 단식하다가 1906년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묘소의 역사를 살펴보면, 최익현이 사망한 이듬해인 1907년 그의 묘는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국도변에 처음 조성되었다. 그러나 참배객이 끊이지 않자 일제의 명령에 따라 1910년(일부 자료에는 1909년으로 기록) 현재의 위치인 예산군 광시면 관음리로 이장되었다.
묘의 형태는 원형의 봉분 앞에 상석이 놓여 있으며, 묘 앞 좌우에는 높이 약 1미터의 돌기둥(석주)이 세워져 있다. 봉분 왼쪽에는 방형의 화강암 대좌와 오석의 비신, 옥개형의 화강암 이수로 구성된 묘비가 있다. 묘비 앞면에는 '면암최익현지묘정부인청주한씨부좌(勉庵崔益鉉之墓 貞夫人淸州韓氏附左)'라고 새겨져 있어, 부인인 청주 한씨가 곁에 함께 모셔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묘소 입구에는 1973년 4월 예산모현사업회에서 건립한 최익현 춘추대의비(春秋大義碑)가 서 있으며, 묘역에는 홍살문이 설치되어 있다.
묘소 앞에는 최익현의 재실이 자리한다. 이 재실은 원래 살림집이었던 것을 1909년 묘가 논산에서 예산으로 이장될 당시 주변 민가를 매입하여 재실로 사용한 것으로, 조선시대 전통가옥의 배치 형태를 지니고 있어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도 지정되어 있다. 제사는 1년에 두 차례(음력 2월 24일, 9월 9일) 지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묘는 조선 말기 위정척사론을 주창하며 국가의 자주권 수호를 역설한 인물의 묘소로서, 역사적·인물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국가유산으로 보존·관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