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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산

최옥산(崔玉山, 1905년~1956년)은 일제강점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활동한 가야금 명인이자 전통음악 연주자·작곡가이다. 본명은 최옥삼(崔玉三)이며, 예명으로 최옥산을 사용하였다. 최옥산류 가야금산조를 창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생애

최옥산은 1905년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건산리에서 최창조와 임동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3형제 중 막내였기에 '최막동'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1911년경 6세 전후부터 장흥읍의 예술전습소에서 가야금을 배웠다. 이후 1922년 전라남도 영암군의 가야금산조 명인 김창조(金昌祖)를 찾아가 가야금과 단소 등을 본격적으로 수학하였다.

1920년대에는 목포에서, 1930년대 이후에는 원산과 함흥의 권번(券番)에서 제자들을 지도하였다. 1940년경 함경남도 청진으로 이주하여 광복 직전까지 거주하였다. 해방 후에는 북한에서 활동하며 최승희 무용연구소의 반주 악사로 참여하였고, 이후 최승희의 음악감독과 반주자, 작곡가로 활동하였다. 1952년 이후에는 평양의 음악대학 민족음악학부 겸임교원으로 재직하였다. 1956년 척수염으로 투병하다 사망하였다.

음악 활동과 작품

최옥산은 일제강점기의 다른 가야금 명인들과 달리 무대 공연이나 방송 출연, 유성기음반 취입 등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1933년 조선일보 나주 지국에서 개최한 '시민위안 납량석악'에 '장흥 최옥산'으로 참여한 기록이 있다.

그의 본격적인 음악 활동은 해방 후 북한에서 시작되었다. 가야금산조, 단소산조, 청성곡 등을 기반으로 다수의 민족 기악곡을 창작하였다. 가야금곡으로는 「안땅산조」, 「살풀이」, 「진양조」, 「중모리」, 「휘모리」, 「다스림」, 「엇모리」 등이 있고, 단소곡으로는 「다스름」, 「신아우」, 「리별곡」, 「초민곡」 등이 있다. 대금곡으로는 「은하수」, 「구룡폭포를 찾아서」, 「봉황새」 등이 있으며, 창작 무용곡으로는 「부채춤」, 「반야월성」, 「조선의 어머니」, 「사도성의 이야기」, 「밝은 하늘 아래」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판소리, 단가, 민요 등을 토대로 각 악기의 특성과 기교를 적극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산조류의 음악을 장단별로 독립된 악곡으로 해체하여 개별 악곡화한 점이 주목된다. 국악관현악에 의한 무용곡 음악을 처음으로 작곡한 인물로 평가되며, 무용극의 심리적 갈등을 극적으로 묘사하면서 현대적 정서를 담아냈다는 평을 받았다.

해외 활동과 제자

1949년 7월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세계청년축전과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세아여성대회에 참가하였다. 1950년부터는 조선예술단 단원으로 소련, 중국, 몽골 등을 차례로 방문하여 공연하였다.

제자로는 함동정월, 김록주(金綠珠) 등이 있다. 현재 평양 용악산에 묻혀 있다.

참고 사항

최옥산의 출생 연도에 대해서는 1905년설과 1903년설이 함께 전해지며, 스승에 대해서도 남한에서는 김창조에게 사사한 것으로, 북한에서는 18세까지 정운용에게 배운 것으로 각각 보고하는 등 남북한 간 기록에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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