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형(崔時亨, 1827~1898)은 조선 말기의 종교인이자 사상가로, 동학(東學)의 제2대 교주이다. 본명은 최경상(崔慶翔)이며, 자는 경오(敬悟), 호는 해월(海月)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경상도 경주에서 태어났다.
최시형은 5세 때 어머니를, 12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다. 17세부터 제지소(製紙所)에서 종이 만드는 일을 하며 생계를 도모하다가, 1861년(철종 12) 먼 일족이던 최제우(崔濟愚)를 만나 동학에 입교하였다. 최제우의 수제자가 된 이후 1863년 북도중주인(北道中主人)으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 8월 14일 도통(道統)을 승계받아 동학의 제2대 교주가 되었다.
1864년 최제우가 조선 정부에 의해 처형되자, 최시형은 관헌들의 추적을 피해 태백산, 소백산 등지로 은신하며 동학의 재건에 힘썼다. 그는 각지를 순회하며 포교에 전념하였고, 1880년 인제군에 경전간행소를 세워 《동경대전(東經大全)》을 간행하고, 이듬해 《용담유사(龍潭遺詞)》를 간행하는 등 교리의 체계화를 이루었다.
최시형은 교단 조직에도 기여하여 1878년 개접제(開接制), 1884년 육임제(六任制)를 마련하여 신도들을 합리적으로 조직하고 교리연구를 위한 집회 체계를 구축하였다. 그의 사상은 범신론적·내재적 경향을 띠어 하느님을 인간과 만물과 동일시하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경천(敬天)·경인(敬人)·경물(敬物)의 삼경사상(三敬思想)을 제시하였다.
1892년부터는 교조 신원(伸寃) 운동을 전개하여 전국 각지에서 합법적 투쟁을 벌였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전봉준(全琫準) 주도로 일어나자, 최시형은 초기에는 무력투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으나 이후 북접(北接) 동학도를 이끌고 농민군에 가담하여 무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개입으로 동학농민운동이 진압되면서 피신 생활을 계속하였다.
1897년 손병희(孫秉熙)에게 도통을 전수하고, 1898년 3월 강원도 원주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 뒤 그해 6월 2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사후 1907년 고종의 특지로 신원(伸寃)되었다. 그의 뒤를 이어 손병희가 동학의 제3대 교주가 되었으며, 이후 동학은 천도교(天道敎)로 개명되어 발전하였다.
최시형은 30여 년간 관헌의 추적을 피하면서도 동학의 교권을 유지하고 교세를 확장한 인물로, 조선 말기 민족 종교 운동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