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정(崔錫鼎, 1646년~1715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석만(錫萬)이며, 자는 여시(汝時)·여화(汝和), 호는 존와(存窩)·명곡(明谷)이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병자호란 당시 주화론(主和論)을 주장한 영의정 최명길(崔鳴吉)의 손자이다.
최석정은 9세에 『시경』과 『서경』을 암송하고 12세에 『주역』을 도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 신동으로 인정받았다. 17세에 감시 초시에서 장원했고, 1666년(현종 7) 진사시에 장원했으며 동시에 생원시에도 합격하였다. 1671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정치적으로 그는 서인(西人)의 일원이었으나 김익훈·김석주의 역모 날조 사건에 반대하면서 소론(少論)의 영수로서 활동하였다. 이조판서, 대제학 등을 거쳐 1697년 우의정, 1699년 좌의정, 1701년 영의정에 올랐으며, 이후 모두 열 차례 입상(入相)하여 조선 숙종 시기 최고위 관료로 활동하였다. 그는 붕당의 폐단을 논하면서 남인(南人)의 일부 서용을 주장하여 노론(老論)의 반발을 사기도 하였으며, 서얼 출신을 삼조(三曹)에 소통하자는 건의를 올리기도 하였다. 당쟁의 화를 줄이려고 힘썼고, 의리·명분론에 집착하지 않고 백성의 어려움과 정치적 폐단을 변통하려 한 행정가로 평가된다.
학문적 측면에서 최석정은 수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그의 대표적 수학 저서로 『구수략(九數略)』이 있다. 이 책은 1710년에서 1715년 사이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며, 4권 2책의 목판본이다. 갑편은 가감승제(加減乘除)의 사칙연산에 관한 기본 설명, 을편은 기본 연산을 다룬 응용문제, 병편은 개방·입방·방정 등에 관한 내용, 정편은 문산·주산 등의 새로운 산법과 마방진 연구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구수략』의 마지막 권에는 마방진(魔方陣), 직교 라틴 방진, 지수귀문도 등 사각형이나 육각형 모양의 수 구성도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
최석정의 수학적 업적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9차 직교 라틴 방진이다. 이는 오일러(Leonhard Euler)의 직교 라틴 방진 연구보다 약 67년 앞선 것으로, 현존하는 기록상 세계 최초로 인정받고 있다. 이 내용은 2007년 『Handbook of Combinatorial Designs』 제2판과 2010년 미국수학협회가 발행하는 『Mathematics Magazine』 6월호에 게재된 논문 "A Remarkable Euler Square before Euler"를 통해 국제적으로 소개되었다. 2013년에는 국립과천과학관의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그 밖의 저서로 『예기유편(禮記類篇)』, 『명곡집(明谷集)』 36권, 편저 『전록통고(典錄通考)』 등이 전한다. 또한 박율(朴繘)이 편찬한 산학서 『산학원본(算學原本)』의 서문을 써주기도 하였다. 1715년 기사(耆社)에 들어갔으며, 같은 해 사망하여 청주 대율리에 장례지냈고, 뒤에 숙종묘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