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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보

최기보(崔基輔, 1881년 9월 13일 ~ 1951년 9월 17일)는 대한제국 관료, 일제강점기의 의병장 겸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호는 산남(山南)·우석(雨石)이다.

생애

최기보는 경상도 영일군 죽장면 일광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황해도 해주, 경상도 밀양과 경주 등지에서 보냈다. 1901년부터 1905년까지 대한제국 관료로 활동하였으며, 경상북도 성주군부군수, 강원도 영월군·울진군 부군수, 경상북도 경주군·영일군 부군수, 강원도 삼척군·원주군·홍천군 부군수, 경기도 양주군 부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1905년 관료직을 사퇴한 이후 경상북도 일대에서 군기(軍器)를 모집하고 의병을 소집하기 시작하였다. 1906년 정용기(鄭鏞基)가 이끄는 산남의진(山南義陣)의 거병에 참여하여 장영수위(將營守衛), 우포장(右砲將) 등을 맡아 의병 모집과 무기 수집에 공헌하였다. 1907년 정용기가 입암 전투에서 전사한 뒤에는 정용기의 부친인 정환직(鄭煥直)을 추대하고 의병대를 수습하여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에는 경상북도·경상남도·강원도 일대를 떠돌며 최산남(崔山南)·최불암(崔佛巖) 등의 가명을 사용하며 처사로 지내면서 지방 향교의 유림들과 독립운동을 공모하였다. 1919년 강원도 춘천에서 3·1 독립만세운동을 목격하였으며, 이후 전국을 방랑하며 국권 회복을 모의하였다.

1922년 9월 중화민국 장쑤성 상하이로 건너가 한국독립당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1931년부터 1940년까지 한국독립당 상임위원 등을 지냈으며, 탈당과 복당을 반복하다가 1940년 최종적으로 한국독립당을 탈당하였다. 이후 중화민국 타이완으로 건너가 타이베이와 타이중에서 조선인 소작농과 공장 직원으로 생활하며 광복을 맞이하였다.

1946년 5월 귀국하여 1946년 8월부터 1948년 2월까지 한국독립당 전임위원을 지냈으며, 1948년 한국독립당을 최종 탈당하였다. 1951년 9월 경상북도 성주에서 사망하였다.

사후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14년 3월 1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그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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