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진(崔慶進, 1908년(?) ~ ? )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경찰 관료이자,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기에 공무원 및 변호사로 활동한 인물이다.
초기 생애
1908년(정확한 연도와 생년월일은 기록에 명확히 남아 있지 않음) 함경남도 함흥부에서 태어났으며, 최명선(崔明善)의 차남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규슈 제국대학 법문학부에 유학한 뒤 1934년 조선총독부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였다.
일제강점기 경력
귀국 후 함경남도청 내무국 지방과속 등에서 근무했으며, 이후 함경남도 경부, 평안남도 강동군수, 평안남도 경시(警視) 등 다양한 경찰 직책을 역임하였다. 광복 직전에는 조선총독부 사무관으로 활동했으며, 당시 경찰 최고위직인 경시 직위에 오른 조선인 중 한 명이었다.
해방·미군정기 및 대한민국 초기 활동
해방 후에는 미군정 시기에 경무부 보안과장을 거쳐 1946년 1월 4일 경무부 차장이 되었고, 1947년 11월 7일 차장 직을 물러났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도 경찰에 복귀하여 경찰국장 대리·경무부 차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종로구 삼각동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으며, 임영신 사건·국회 프락치 사건 등 주요 사건의 변호를 담당하였다.
한국전쟁과 이후 행적
1950년 7월 3일, 6.25 전쟁 중 조선인민군에 납치되어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전후 그의 가족은 서울 가회동으로 이주하였다.
평가 및 논란
최경진은 친일파 708인 명단 및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경찰 관료로서의 활동과 해방 이후 공직 및 법조계 활동이 동시에 평가되고 있다.
주요 참고문헌: 위키백과 “최경진”, 국사편찬위원회 일제침략하 36년사, 반민족문제연구소 자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