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初, 楚, 肖)는 한국의 성씨 중 하나이다. 한자 표기에 따라 楚(초), 肖(초), 初(초) 세 종류가 존재하며, 각각 다른 계통과 본관을 가진다. 로마자 표기는 주로 Cho를 사용하나, 이는 조(趙)씨의 일반적인 로마자 표기와 동일하여 구분이 어렵다.
1. 楚(초)
중국계 귀화 성씨로, 본관은 파릉(巴陵, 현 경상북도 성주) 단본으로 알려져 있다. 문헌에 따르면 시조 초해창(楚海昌)은 중국 명나라 때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으며, 1644년(조선 인조 22년)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켜 조선으로 망명하였다. 그는 조선에서 충의장군(忠義將軍)으로 성산백(星山伯)에 봉해졌고, 성주(星州)에 정착하였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성주, 청주, 강릉 등 여러 본관이 기록되어 있으나, 모두 동원분파(同源分派)로 현존하는 본관은 파릉 단본이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따르면 楚(초)씨는 1985년 232명, 2000년 281명, 2015년 200명으로 집계되었다.
2. 肖(초)
제주 초씨(濟州肖氏)로, 본관은 제주특별자치도이다. 시조 초고도(肖古道)는 중국 한(漢)나라 사람으로, 원래 성은 조(趙)씨였으나 조(趙)자에서 走(주)변을 떼어내고 초(肖)씨로 개성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씨족통보에 따르면 고려 시대 원나라에서 건너와 제주도에 정착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초성기(肖星起)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으며, 후손들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따르면 1985년 30명, 2000년 14명, 2015년 76명으로 조사되었다.
3. 初(초)
운남 초씨(雲南初氏) 단본으로 전해지나, 본관의 유래 및 시조에 대한 문헌이 부족하여 자세한 내력을 알 수 없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따르면 1985년 1명, 2000년 45명(15가구)으로 집계되었다.
종합 인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기준, 초(楚)씨 200명, 초(肖)씨 76명을 합산하면 약 276명으로, 초(初)씨를 포함할 경우 300명 내외로 추정된다. 이는 대한민국 전체 성씨 중 매우 희귀한 성씨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