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진(淸海鎭)은 신라 시대인 828년(흥덕왕 3년) 장보고(張保臯)가 완도군 청산도(靑山島)에 설치한 진(鎭)으로, 해상 교통의 요충지에서 해적 소탕과 해상 무역 독점, 그리고 신라 중앙 정계 진출의 거점 역할을 수행한 군사·경제적 기지이다.
설치 배경과 목적 신라 하대로 접어들면서 지방 호족의 세력이 강해지고 중앙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서남 해안을 중심으로 해적(해상 세력)의 약탈이 빈번해졌다. 당나라에 건너가 무령군 소장(武寧軍小將)을 지내며 해상 사정에 밝았던 장보고는 귀국 후 흥덕왕에게 진(鎭) 설치를 건의하여 승인받았다. 청해진 설치는 해적 소탕을 통한 해상 안전 확보와 국제 해상 무역로 장악을 목적으로 하였다.
기능과 역할
- 군사적 기능: 서남 해안의 해적을 소탕하고 신라의 해양 주권을 수호하는 전진 기지 역할을 하였다. 장보고 휘하에는 1만여 명의 병력이 있었으며, 이들은 선박 건조와 해전 기술에 뛰어났다.
- 경제·무역적 기능: 당(唐), 일본(日本)과의 삼각 무역로 중간 기점으로서 도자기, 차(茶), 비단, 향료 등을 중개하는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특히 신라방(新羅坊)을 당과 일본에 설치하여 교역망을 확장하였다.
- 정치적 기능: 장보고는 청해진을 기반으로 군사력을 배경으로 중앙 정계에 개입하였다. 839년(민애왕 원년) 신무왕(神武王) 옹립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고, 딸을 신무왕의 아들(훗날 문성왕)에게 입궐시키려 하였으나 귀족 세력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하였다.
몰락과 폐지 846년(문성왕 8년) 장보고가 염장(閻長)에게 암살당한 후 청해진의 세력은 급격히 쇠퇴하였다. 중앙 정부는 청해진의 독립적 세력화를 우려하여 851년(문성왕 13년) 청해진을 폐지하고, 그 기능과 병력을 내륙의 견훤(甄萱) 세력 견제 등을 위해 전라남도 강진군으로 이전시킨 '법성진(法聖鎭)' 등으로 분산시켰다.
역사적 의의 청해진은 신라가 삼국 통일 이후 동아시아 해상 무역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해상 왕자'라 불린 장보고의 해양 진출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유적이다. 1998년 사적 제308호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에는 장보고 기념관과 청해진 유적지가 정비되어 공개되고 있다.
주요 유적 및 유물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일대에 토성(土城) 흔적과 건물지, 선착장 시설 추정지 등이 발굴되었으며, 당나라 및 일본산 자기편, 기와편, 철기류 등이 출토되어 국제 교류의 실상을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