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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의마총

청주 의마총(淸州 義馬塚)은 대한민국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국사리 산146번지에 위치한 향토유적이다. 2015년 4월 17일 청주시 향토유적 제103호로 지정되었으며, 소유 주체는 순천박씨 교리공파 민양공 종중으로 알려져 있다.

의마총은 '의로운 말의 무덤'이라는 뜻으로, 병자호란 때 순국한 박동명(朴東命) 장군이 타고 다니던 애마(愛馬)의 무덤이다. 사람이 아닌 말의 무덤이라는 점에서 국내에서 드문 유형의 유적으로 평가된다. 유적에는 '매은당의마지총비(梅隱堂義馬之塚碑)'라는 비석과 함께, '몽단이재와 의마총 유래비'가 세워져 있어 이 유적의 연원을 설명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에 따르면, 박동명은 선조 8년(1575년) 청주시 비하동 '주봉마을'에서 출생하여, 선조 32년(1599년) 무과에 급제한 뒤 태안군수와 제주목사를 역임한 인물이다.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62세의 나이로 의병을 모아 남한산성으로 진격하였고, 왕의 피신을 돕고 적과 맞서 싸우다 화살에 맞아 순국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승에 따르면, 전투 후 부하들은 박동명의 시신을 찾지 못했으나, 애마가 주인의 저고리를 물어뜯어 안장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휘하 장수 김득성이 저고리를 안장에 실은 채 주인의 혼을 부르며 귀향하던 중, '몽단이고개'에 이르러 혼의 응답이 끊어졌다고 한다. 이 무렵 박동명의 아들 홍원이 꿈에서 아버지가 "내가 고개를 넘지 못하고 구천으로 올라갔으니 내 옷을 거두어 고개에 무덤을 쓰도록 하라"는 현몽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아들이 몽단이고개에 이르러 김득성이 진혼제를 올리는 것을 확인하고 장군의 의관장(시신 없이 의복만 묻는 장례)을 지냈다는 것이다.

한편 애마는 골짜기 아래에서 말발굽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아 7일간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슬피 울다가 죽었다고 전해지며, 이에 주인에 대한 말의 의로움을 기려 무덤을 쓰고 후히 장사 지냈다는 것이 의마총의 유래이다. 지명과 관련하여, 이곳을 '꿈에서 깨어났다'는 뜻으로 '몽단이'라 부르고, '말발굽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하여 '접지골'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박동명 장군의 묘소는 의마총에서 능선을 따라 오르면 위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마총은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충의(忠義)의 가치를 상징하는 유적으로, 청주 지역의 향토 문화유산으로 보존·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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