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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남석교

청주 남석교(淸州 南石橋)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 일대에 위치한 조선시대 이전의 석교(돌다리)이다. 2015년 4월 17일 청주시의 향토유적 제47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및 규모

청주 남석교는 현재 청주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육거리시장 지하에 매몰되어 있는 돌다리로, 2004년 11월 청주대학교 박물관의 발굴 조사 결과 총길이 80.85m, 너비 4.1m로 확인되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조선시대 이전의 다리 중 가장 긴 석교로 알려져 있다. 다리의 구조는 3행 26열의 돌기둥(석주)을 세운 뒤, 널빤지 모양으로 다듬은 화강석을 대청마루를 놓듯 이어놓은 가구식 구조의 판교(板橋) 형식이다.

위치 및 역사적 배경

남석교는 옛 청주읍성의 남문 밖에 위치하였으며, 당시 청주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던 무심천(無心川) 위에 가설되었다. 무심천은 청주읍성으로의 적군 침입을 막는 해자(垓字) 역할도 하였고, 남석교 주변에는 주막과 시장이 형성되어 번성하였다.

축조 시기에 대해서는 학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기원전 57년(한 선제 오봉원년)이라는 설이 『하주당시고』(荷珠堂詩稿)의 기록에 근거하여 제기되었으나 신빙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과 『여지도서』(1757년)에는 남석교가 '대교(大橋)'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외에도 고려 시대 축조설, 신라 진흥왕 이전설, 조선 중기 이전설 등이 존재한다. 청주읍성의 축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고려 시대에 처음 가설되었고, 이후 수차례 보수를 거쳐 조선 시대에 현재의 형태로 정비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매몰 경위

1906년 발생한 대홍수로 인해 무심천의 물길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남석교 아래로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고, 다리 바닥에는 흙이 지속적으로 쌓였다. 이후 일제 강점기인 1932년, 일제는 청주 석교동 일대의 제방공사를 시행하면서 남석교를 흙으로 완전히 매몰시켰다. 당시 일제가 도시 정비를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민족문화 말살 의도가 있었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답교놀이(踏橋놀이) 전통

남석교는 정월 대보름에 건강을 기원하며 다리를 건너는 답교놀이 장소로 유명하였다. 전통적으로 청주 지역민들은 정월 대보름에 자기 나이만큼 남석교를 오가면 건강을 지키고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현재는 남석교가 지하에 매몰되어 있어 실제 다리를 건널 수 없으며, 청주문화원이 2002년부터 정월 대보름에 남석교 모형을 제작하여 답교놀이를 재현하고 있다.

문화유산 지정 및 복원 논의

청주 남석교는 2015년 청주시 향토유적 제47호로 지정되었다. 청주시는 지하에 매몰된 남석교를 발굴·복원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자 여러 차례 사업을 추진하였으나, 토지 보상비 문제와 육거리시장 상인들의 상권 위축 우려, 다리 하부의 모래 지반으로 인한 시장 건물 붕괴 위험 등의 이유로 복원은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육거리시장 천장에 설치된 라이트캔버스를 통해 남석교의 옛 모습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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