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곽훈 효자비(淸州 郭壎 孝子碑)는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오창호수공원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효자비이다. 한자 표기는 '淸原 郭壎 孝子碑'로도 쓰인다. 2008년 8월 1일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65호로 지정되었으며, 이후 2021년 11월 19일 충청북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지정되었고,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북도 문화유산자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곽훈의 인물 정보
곽훈(郭壎)은 본관이 청주(淸州)이며, 자는 군응(君應)이다. 청주곽씨 시조인 곽상(郭尙)의 20세손으로 알려져 있다. 고조할아버지는 곽순(郭恂), 증조할아버지는 곽비(郭庇, 1415~1481), 할아버지는 곽희(郭僖), 아버지는 곽영형(郭英衡)이다. 아버지 곽영형은 군수 벼슬을 지냈으나, 곽훈 자신은 벼슬을 하지 않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양청리 회암마을에서 태어나 살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효행 기록
곽훈의 효행 사실은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 권5에 '곽훈감호(郭壎感虎)'라는 항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곽훈은 60세에 어머니상을 당하여 6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집이 가난하여 벼슬을 구하지 않았으며, 어머니가 죽은 후 여막(廬幕)에서 지내던 중 맑은 샘물이 저절로 솟아나고 나물이 자라났으며, 호랑이가 나타나 벗이 되어 지켜주고 의로운 스님이 와서 수호하였다고 전한다. 삼년상을 마치고 돌아가려 할 때 호랑이와 스님은 간 곳이 없어지고 샘물도 말라버렸다고 한다.
이러한 효행 사실은 지평 김충갑(金忠甲) 등 수백 인의 글로 선조에게 상달되어 정려(旌閭)를 받았으며, 이후 예조참판으로 증직(贈職)되었다. 명종 때 정려되었다는 기록도 있으며, 『여지도서』와 각종 읍지에도 곽훈의 효행이 실려 있다.
비석의 건립과 형태
비석은 1581년(선조 14) 10월에 세워졌다. 비신(碑身)은 높이 112cm, 너비 52.5cm, 두께 18.5cm이며, 덮개돌(개석)은 높이 33cm, 너비 87cm, 두께 56cm이다. 비신은 고운 화강석으로 조성되었고, 덮개돌은 팔작지붕 형태로 밑면에 홈을 파서 비신 위에 올렸으나 풍화가 심한 상태이다. 비신 위에는 새로 만든 화강암 받침돌이 있다.
비의 앞면에는 큰 글씨로 '효자 학생 곽훈지리(孝子 學生 郭壎之里)'라고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자군응사재신증삼강행실(字君應事在新增三綱行實) 만력신사시월일립(萬曆辛巳十月日立)'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는 자가 군응이고 효행 사실이 『신증삼강행실』에 실려 있으며, 만력(萬曆) 신사년(辛巳年, 1581년) 10월에 세웠다는 내용이다.
위치 변천
본래 비석은 옛 오창면 양청리 호암저수지 안쪽 논둑에 있었으나, 오창과학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현재의 오창호수공원 남동쪽, 중앙공원 동쪽 끝 생태 이동통로 교량 아래로 이전되었다. 현재 주위에는 보호 철책과 문화재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소유자와 관리자는 청주 곽씨 종중이다.
의의와 평가
조선 전기에 건립된 효자비는 드문 편이며, 청주 곽훈 효자비는 청주의 토성(土姓)인 청주 곽씨의 대표적인 유산으로 평가된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수록된 효자비로서 학술적·문화적 가치가 크다. 다만 곽훈에 대해서는 일반 문헌기록에서 찾을 수 없고, 그의 묘소가 오창과학산업단지 건설 과정에서 이장되었는지 또는 무연고 분묘로 처리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 직계 후손의 존재 여부도 확인되지 않으며, 청주곽씨 종친회 대표는 곽노언(충남 아산시 송악면 소재)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자료로는 『동국신속삼강행실도』, 『충청북도 문화재 대관』(2016),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및 디지털청주문화대전의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