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첨주형 투구(簷胄形 投球)는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중기에 걸쳐 널리 사용된 투구의 한 형태이다. '첨주(尖胄)'라고도 불리며, 서양의 케틀햇(kettle hat)과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
명칭의 유래
투구 둘레 전체를 따라 처마처럼 비교적 긴 차양(챙)이 달려 있어, '처마 첨(簷)' 자를 사용하여 '첨주형 투구'라고 명명되었다. 이 차양은 태양빛을 가리거나 비를 막는 기능 외에도, 위에서 내려치는 베기 공격을 방어하는 실용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구조와 특징
첨주형 투구는 긴 철판 여러 개(주로 4개)를 세로 방향으로 둥글게 배열하고, 철띠와 쇠못(리벳)으로 결합하여 제작되었다. 지역과 시대에 따라 투구 본체를 통짜로 만들거나 여러 판을 리벳으로 조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투구의 높이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는데,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낮은 형태였다가 이후 일본 장창병의 내려치는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높아졌으며, 조선 후기 간주형 투구에 밀려 사라졌다가 구한말 육군복장규칙이 선포되면서 약 200년 만에 부활하기도 하였다.
역사적 배경
고려 말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여 조선 초·중기까지 주력 투구로 자리 잡았다. 실용적인 챙의 존재 덕분에 기존의 원주형 투구를 점차 대체하였다. 주로 일반 병사들이 착용하였으나, 여러 장수들도 그 실용성과 가성비를 높이 평가하여 애용하였다.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 명나라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투구가 사용되었으며, 이는 원나라 투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에는 간주형 투구에 밀려 점차 사라졌다.
현대의 인식
과거 사극 등 매체에서는 간주형 투구에 비해 장식성이 떨어지는 외형 탓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으나, 2010년대 중후반 이후 역사 고증이 중요시되면서 등장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