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천치메이

천치메이(陳其美, Chen Qimei, 1878년 1월 17일 ~ 1916년 5월 18일)는 청나라 말기의 경찰관이자 중화민국의 혁명가·정치인이다. 자(字)는 잉스(英士)이며, 한국 한자음으로는 진기미라고도 읽는다.

개요

중국 저장성(浙江省) 우싱현(吳興縣) 출생. 신해혁명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으로, 상하이에서 봉기하여 상하이 도독(滬軍都督)을 지냈다. 장제스(蔣介石)의 정치적 스승으로, 장제스를 쑨원(孫文)에게 소개하고 혁명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동생은 천치차이(陳其采), 조카로는 천궈푸(陳果夫)·천리푸(陳立夫) 등이 있다.

생애

  • 1906년 일본 도쿄의 경감학교(警監學校)에 유학, 동년 겨울 중국혁명동맹회(中國革命同盟會)에 가입.
  • 귀국 후 청나라 경찰로 일하면서도 비밀리에 상하이의 비밀결사 청방(靑幇)에 가입, 조직을 이용해 혁명운동을 확대.
  • 1911년 10월 우창 봉기(武昌起義) 발발 후, 11월 3일 상하이에서 봉기하여 점령, 상하이 도독으로 추대됨.
  • 쑨원이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에 취임하는 데 큰 공을 세움.
  •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집권하자 공상총장(工商總長)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음.
  • 1913년 제2차 혁명(계축전쟁)을 일으켰으나 실패, 일본으로 망명.
  • 1915년 위안스카이의 황제 즉위(홍헌제제)에 반대하여 귀국, 호국전쟁(護國戰爭)에 참여.
  • 1916년 5월 18일, 상하이에서 위안스카이가 보낸 자객(장쭝창, 張宗昌)에게 암살됨. 향년 38세. 위안스카이가 급사하기 불과 19일 전이었다.

한국 독립운동 지원

천치메이는 한국 독립운동 지사들과 깊이 교류하며 적극 지원하였다. 특히 신규식(申圭植)과 함께 신아동제사(新亞同濟社)를 조직하여 한·중 혁명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한국·베트남·인도 등 식민지 약소민족의 독립운동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그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평가

신해혁명의 성공과 중화민국 수립에 결정적 역할을 한 혁명가이자, 장제스의 정치적 후원자로 평가된다. 다만 정적(특히 타오청장, 陶成章)을 암살하는 등 음모와 술수를 거리낌 없이 사용한 면도 있어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국민당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가 박한 편이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