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실의(天主實義)
개요
《천주실의》(天主實義)는 중국 명나라 시기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중국명 利瑪竇, 1552~1610)가 한문으로 저술한 천주교 교리서이자 호교서(護敎書)이다. 1603년 중국 북경에서 정식 간행되었다. 책 이름은 라틴어 'De Deo Verax Disputatio'를 번역한 것으로, 직역하면 '하느님에 대한 참된 토론'이라는 뜻이다.
저술 배경과 간행
마테오 리치는 1583년부터 중국에 머물며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불교 용어를 사용한 교리서를 출판했으나 중국 문인들에게 환영받지 못하자, 유교적 접근 방식의 선교 전략을 세웠다. 《천주실의》는 1584년 루지에리(Michele Ruggieri)가 저술한 《천주실록》(天主實錄)의 개정판으로, 1593년에서 1596년 사이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식 간행은 리치가 북경에 거주하게 된 뒤인 1603년에 이루어졌다. 이후 1604년 광둥성 사오저우에서 제2판, 1607년 이지조(李之藻)에 의해 제3판이 간행되었다.
구성과 내용
《천주실의》는 상·하 2권으로, 모두 8편 174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양 학자를 대변하는 '서사'(西士)와 중국 학자를 대변하는 '중사'(中士)가 대화를 통해 토론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제1편: 천주가 만물을 창조하고 주재하는 존재임을 논증
- 제2편: 불교·도교를 논박하고, 유교의 태극설을 제외한 부분에 대해서는 찬동하는 논리를 전개
- 제3편: 인간 영혼의 불멸성과 영성(靈性)을 논증
- 제4편: 고대 신령에 대한 신앙과 악마·지옥의 기원을 논함
- 제5편: 불교의 윤회설을 배격하고 그리스도교의 재계(齋戒)를 설명
- 제6편: 사후 상벌, 지옥·천국·연옥에 관한 교리를 설명
- 제7편: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악, 천주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설명
- 제8편: 유럽의 관습과 성직자 독신제, 원죄와 천주강생(天主降生)을 설명
이 책은 사서육경 등 중국 고전을 적절히 인용하여 유교적 교양을 바탕으로 천주교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특징을 지닌다. 리치는 현세의 윤리·도덕 실천을 강조하는 공자의 유교 사상을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찬양하면서 천주교 교리를 폈고, 우상론적인 불교와 도교를 논박하였다.
동아시아에서의 영향
《천주실의》는 간행 직후부터 한자문화권에 빠르게 유포되었다. 1604년에는 일본에 전해졌고, 조선에는 17세기 초 사대사행원(事大使行員)들에 의해 전래되었다.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에 최초로 그 내용과 비판이 소개되었고, 이익(李瀷)은 《천주실의발》(天主實義跋)을 지어 논평하였다. 이후 신후담(愼後聃)·안정복(安鼎福)·이헌경(李獻慶) 등은 유학적 관점에서 이 책을 비판하는 《서학변》(西學辨)·《천학고》(天學考)·《천학문답》(天學問答) 등을 저술하였다.
반면 이벽(李檗)·권일신(權日身)·정약용(丁若鏞)·이승훈(李承薰) 등은 이 책의 교리를 이해하고 수용하여, 1784년(정조 8) 조선천주교회 창설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청나라 건륭제는 이 책을 중국인에게 큰 영향을 준 양서로 보고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수록하게 하였다.
의의와 평가
《천주실의》는 동북아시아 유교 전통 사회에 가톨릭 신앙을 전파한 중요한 문헌으로, 중국 고대사상과 서구 윤리사상의 융합을 시도한 첫 작품으로 평가된다. 동양문화권에 그리스도교 가치체계를 첨가하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사상사·문화사·종교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다만 리치의 보유론적(補儒論的) 교리 해설에 대해서는 천주교 내부에서도 영합주의적 오류라는 비판이 제기되어, 이후 중국교회의 전례문제(典禮問題)가 야기되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