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준경
척준경 (拓俊京, 1070년? ~ 1144년)은 고려 중기의 무신으로, 뛰어난 무용과 지략으로 여진 정벌에 큰 공을 세웠으나, 이후 이자겸과 결탁하여 권력 투쟁에 깊이 관여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의 무용은 고려 역사상 전설적인 수준으로 평가받지만, 정치적 행보는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생애
초기 생애와 등장
척준경은 황해도 곡산현 (현 황해북도 곡산군)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무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무예를 숭상하는 분위기였으나, 그가 관직에 오르게 된 계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젊은 시절부터 남다른 무예를 지닌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1104년 (숙종 9년) 윤관(尹瓘)이 이끄는 동북9성 개척 과정에서의 여진족 정벌 때부터이다. 당시 척준경은 하급 무관에 불과했으나, 전투에서 압도적인 무용을 발휘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여진 정벌에서의 활약
척준경은 윤관이 여진족을 토벌하기 위해 조직한 별무반에 참여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특히 1107년 (예종 2년), 동북9성 중 하나인 영주성(英州城) 전투에서 윤관의 군대가 여진족의 기습을 받아 위기에 처하자, 척준경은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여진족 장수를 베고 위기를 타개했다. 이 외에도 곽협성(郭協城), 웅주성(雄州城) 전투 등 여러 전장에서 용맹을 떨쳤다.
가장 대표적인 일화는 1108년 (예종 3년), 동녕성(東寧城)이 여진족에게 포위되었을 때의 활약이다. 척준경은 성벽을 타고 올라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들어가 여진족 병사들을 도륙하고, 성문을 열어 고려군이 성을 탈환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의 이러한 활약은 고려사(高麗史)에도 "용맹이 서초패왕(西楚覇王) 항우에 버금갔다"고 기록될 정도로 전설적이었다.
이자겸과의 결탁과 몰락
여진 정벌 후 무관으로서 승승장구하던 척준경은 인종 대에 이르러 외척이자 권신이었던 이자겸(李資謙)과 결탁하게 된다. 1126년 (인종 4년), 이자겸이 자신을 제거하려는 인종과 환관 세력에 맞서 군사를 일으킨 이자겸의 난 때 척준경은 이자겸의 편에 서서 궁궐을 불태우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자겸의 권세가 절정에 달했을 때, 척준경은 인종의 밀명을 받아 이자겸을 배신하고 그의 세력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로써 이자겸은 유배되고, 척준경은 일시적으로 인종의 신임을 얻어 재차 권력을 누렸다.
하지만 그 역시 이자겸과 다를 바 없는 전횡과 탐욕을 일삼았고, 사사로운 토지를 점탈하고 백성을 괴롭히는 등의 비행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1127년 (인종 5년) 문신들의 탄핵을 받아 관직을 삭탈당하고 전라도 암태도(巖泰島)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1144년 사망했다.
평가
척준경은 고려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무예와 용맹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는다. 전장에서의 그의 활약은 거의 신화적인 수준으로, 고려의 국방력을 강화하고 여진족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반면, 그의 정치적 행보는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다. 권력에 대한 탐욕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처세술, 그리고 이자겸을 배신하는 등의 변절 행위는 그를 단순한 영웅이 아닌 복합적이고 논쟁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어떤 면에서는 탁월한 군사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야망으로 인해 시대의 혼란을 가중시킨 인물로 비판받기도 한다.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척준경은 그의 극적인 삶과 전설적인 무용 덕분에 현대 한국의 여러 대중매체에서 다뤄지고 있다.
- 드라마: KBS 드라마 《무인시대》(2003~2004)에서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여 그의 무용과 정치적 행보가 그려졌다.
- 소설/웹툰: 여러 역사 소설과 웹툰 등에서 그의 일대기가 재해석되거나 주연급 캐릭터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