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處容)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인물로,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처용랑 망해사(處容郞望海寺)」 조에 수록된 처용설화의 주인공이다. 설화상으로는 동해 용왕(龍王)의 아들로 묘사되며, 신라 제49대 헌강왕(憲康王, 재위 875~886) 대를 배경으로 한다.
설화의 내용
헌강왕이 개운포(開雲浦,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일대)에서 놀다가 돌아가려 할 때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여 길을 잃었다. 일관(日官)이 이를 동해 용의 조화라고 판단하고 좋은 일을 행하여 풀 것을 권하자, 왕이 용을 위해 근처에 절을 짓도록 명령하였고 이에 구름과 안개가 걷혔다. 이에 동해 용이 기뻐하여 아들 일곱을 거느리고 왕 앞에 나타나 덕을 찬양하며 춤추고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 가운데 한 아들이 왕을 따라 서울로 와서 정사를 도왔는데, 그가 바로 처용이다.
왕은 처용에게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삼게 하고 급간(級干)의 관등을 주었다. 처용의 아내가 매우 아름다웠기 때문에 역신(疫神, 질병을 옮기는 신)이 그를 흠모하여 사람으로 변신해 밤에 몰래 처용의 집에 가서 동침하였다. 밖에서 돌아온 처용은 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노여워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이에 감동한 역신은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어 처용 앞에 꿇어앉아, 앞으로는 처용의 모습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사라졌다. 이 일로 인해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모습을 그린 부적을 문에 붙여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이하는 풍습이 생겼다.
문화적 전승
처용이 지어 불렀다고 전하는 노래는 「처용가(處容歌)」라 하며, 8구체 향가로 『삼국유사』에 수록되어 있다. 처용이 추었다는 춤은 처용무(處容舞)로 전승되었는데, 고려시대의 사서와 문집에 처용희(處容戱)나 처용무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며, 조선 초에 편찬된 『악학궤범(樂學軌範)』과 『악장가사(樂章歌詞)』에 고려의 〈처용가〉가 실려 있다. 처용무는 궁중에서 잡귀를 쫓는 나례(儺禮) 의식과 관련하여 전도와 후도 두 차례에 걸쳐 추어졌으며, 이후 오방(五方)의 방위와 빛깔에 따라 옷을 입은 다섯 명의 처용이 추는 형태로 발전하였다. 처용무는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고,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역사적 배경과 해석
처용설화는 헌강왕 대의 사치스러운 왕경(王京)의 번영, 호국신(護國神)들의 잦은 출현, 가무(歌舞)의 성행 등 신라 하대의 정치·사회적 정황을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처용의 실체에 대해서는 울산 지방 호족의 아들이라는 견해, 당시 신라에 내왕하던 아라비아 상인이라는 추측, 화랑집단과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견해 등 다양한 학설이 제기되었으나, 이는 모두 추정에 불과하며 확정된 바는 없다. 처용설화에는 용신신앙, 호국신신앙, 벽사진경(辟邪進慶) 사상 등 신라 하대 신앙의 일면이 반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