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계왕(責稽王)은 백제의 제9대 국왕으로, 재위 기간은 286년부터 298년까지이다. 일명 청계(靑稽) 또는 책체(責替)라고도 하며, 청계왕(靑稽王)이나 책찬왕(責贊王)으로도 불린다. 전대 국왕인 고이왕(古爾王)의 맏아들로, 왕비는 대방왕(帶方王)의 딸 보과(寶菓)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체구가 장대하고 의지가 굳세었다고 전해진다.
286년 책계왕이 즉위한 직후, 고구려가 대방을 공격하자 대방왕은 사위인 책계왕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책계왕은 대방이 장인과 사위의 나라라는 이유로 군사를 보내 고구려군을 물리쳤다. 이로 인해 고구려와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왕은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하여 아차성(阿且城, 지금의 서울 광장동 아차산성)과 사성(蛇城, 지금의 서울 풍납동 토성)을 수축하였다. 또한 즉위 직후 장정을 선발하여 위례성(慰禮城)을 보수하였다.
298년, 한군(漢軍)이 낙랑과 맥인(貊人)을 이끌고 침입해 왔을 때 책계왕은 직접 출전하여 맞섰으나 백제 군이 크게 패하였고, 전투 중 적병에게 살해되었다. 이때의 전투는 고구려와 백제가 직접 맞붙은 최초의 기록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편 《삼국유사》 왕력편에는 "제9대 책계왕은 고이의 아들이며, 일작 청체(靑替)라고도 하는데 잘못된 것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책(責)과 청(靑), 계(稽)와 체(替)의 글자 모양이 서로 비슷하여 발생한 착오로 이해된다.
책계왕과 대방왕의 딸 보과와의 혼인은 고구려의 위협을 피하려는 대방의 방어책과 백제의 왕권 강화 방책이 결합된 혼인 동맹으로 해석된다. 주요 사료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