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륜(蔡倫, ? ~ 121년경)은 중국 후한 시대의 환관이자 정치가로, 종이 제작 기술을 개량하여 보급한 인물이다. 자는 경중(敬仲)이며 계양군(현재의 후난성 레이양시) 출신이다.
후한의 화제(和帝) 시기인 105년, 채륜은 나무껍질, 마직물 조각, 오래된 그물 등을 원료로 삼아 종이를 만드는 공정을 체계화하여 황제에게 보고하였다. 이 방식으로 생산된 종이는 당시 제작 비용이 많이 들던 비단이나 무겁고 부피가 컸던 죽간(竹簡) 및 목간(木簡)을 대체하는 기록 매체로 활용되었다. 그가 개량한 종이는 그의 관직명을 따서 '채후지(蔡侯紙)'라고 불렸다.
채륜의 종이 제작법은 지식의 기록과 전파를 용이하게 함으로써 인류 문화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상방령(尙方令)을 거쳐 용정후(龍亭侯)에 봉해졌다. 그러나 이후 궁정 내부의 권력 다툼에 휘말려 조사를 받게 되자 독약을 마시고 자결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채륜 이전 시기에도 종이와 유사한 형태의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였으나, 원료의 범위를 넓히고 제작 공정을 표준화하여 종이의 실질적인 보급을 가능하게 한 인물로 역사적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