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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려

창려(昌黎)는 중국 고대의 지명이자, 이 지명에서 유래한 당나라 문인 한유(韓愈)의 호(號)를 가리키는 한자어이다. 또한 창려(昌閭)는 전한(前漢) 초기의 관료 이름이기도 하다.

1. 창려(昌黎) - 지명

창려(昌黎)는 중국 고대의 지명으로, 현재의 중국 요서(遼西) 진저우(錦州) 일대에 위치했던 지역이다.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가 244년(정시 5년)에 요동속국도위(遼東屬國都尉)의 관할지를 분리하여 창려군(昌黎郡)을 설치하였다. 서진(西晉) 건국 이후 276년(함녕 2년)에는 요동군, 낙랑군, 대방군, 현도군과 함께 평주(平州)로 분리되었다. 이후 선비족 모용부(慕容部)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모용외(慕容廆)가 극성(棘城)에 도읍을 정하면서 모용선비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북위(北魏)와 수(隋)나라를 거치면서 요서군(遼西郡)에 통폐합되었다.

2. 창려(昌黎) - 한유(韓愈)의 호

당나라의 대표적 문인·정치가·사상가인 한유(韓愈, 768~824)는 자신의 군망(郡望, 본관)을 창려(昌黎)라고 자칭하였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그를 한창려(韓昌黎) 또는 창려선생(昌黎先生)이라 불렀다. 한유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변려문(騈儷文)을 비판하고 고문(古文) 운동을 주창하였다. 그의 시문집은 《창려선생집(昌黎先生集)》이라는 이름으로 전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한유' 항목의 설명에 그의 호가 창려(昌黎)임을 명시하고 있다.

3. 창려(昌閭) - 전한의 관료

창려(昌閭, ?~?)는 전한(前漢) 초기의 관료로, 문제(文帝) 12년(기원전 168)에 봉상(奉常, 국가 제사 및 교육을 담당하는 관직)에 임명되었다. 《한서(漢書)》 백관공경표(百官公卿表)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나, '창려'는 이름자(名)일 뿐 성씨는 알려져 있지 않다.

4. 창려(昌閭) - 기타

위키백과 한국어판에는 '창려(昌閭)' 항목이 전한 관료에 대해서만 존재하며, 이 외의 용례로서 '창려'가 별도의 표제어로 등재된 사례는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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