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취한정(翠寒亭)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에 있는 창덕궁 후원(비원) 옥류천 계곡 입구에 자리한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깊숙한 골짜기에 위치하며, 옥류천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
취한정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궁궐지>에 소요정 동쪽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조선 제19대 임금 숙종이 지은 시 「취한정제영(翠寒亭題詠)」이 전해지며, 이에 감응한 정조의 시 또한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숙종 재위(1674~1720) 이전에는 이미 건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궐도>에도 옥류천 주변에 취한정이 그려져 있다. 다만 창건 연대에 대한 정확한 시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정자 이름 '취한(翠寒)'은 '푸르고 서늘하다'는 뜻으로, 취(翠)는 푸른빛, 한(寒)은 차가움을 나타낸다. 과거 이 일대에 소나무 숲이 울창하여 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던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전해진다. 현재 주변에는 느티나무가 우거져 있다.
취한정의 건축적 특징을 살펴보면, 1층 목조 구조의 정면 3칸·측면 1칸 규모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에 홑처마로 마감되었다. 서까래와 구조 부재가 그대로 드러나는 연등천장 형식이며, 사각 기둥은 총 8개이다. 모든 칸 아래쪽에는 난간을 두었고, 가운데 칸 남쪽에는 출입 공간과 풍혈이 뚫린 짧은 난간이 설치되었다. 기단 위에는 장초석을 깔고 앞에 두 단의 돌계단을 두었다. 공포를 두지 않고 납도리를 사용한 민도리 양식이다.
원래는 마루 위에 온돌방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나, 현재는 방이 사라지고 전체가 개방된 형태이다. <동궐도>에 그려진 모습에서도 가운데 칸만 마루로 표현되고 양쪽에 온돌방이 배치된 것이 확인되어, 후대에 현재의 형태로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취한정의 8개 사각 기둥에는 본래 12점의 주련(柱聯)이 걸려 있었으나, 현재는 1개가 누락되어 11점만 남아 있다. 주련에는 송나라 왕안석, 당나라 왕유와 원진 등의 시구가 인용되어 있으며, 숙종·정조의 시가 취한정과 주변 자연 경관을 묘사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취한정은 임금이 옥류천 우물(약수터)에서 약수를 마시고 돌아가는 길에 잠시 쉬어 가던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취한정이 속한 창덕궁 후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의 일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