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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진선문

진선문(進善門)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창덕궁의 궁문(宮門) 중 하나이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으로 진입한 후 금천교(禁川橋)를 건너 정면 일직선상의 축에 놓여 있는 문으로, 법전인 인정전(仁政殿)으로 들어가기 위한 중문(中門) 역할을 한다. 한자 표기 '進善門'은 '선(善)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지닌다.

1405년(조선 태종 5년) 창덕궁 창건과 때를 같이하여 건립되었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기록에 명시되지 않았으나, 진선문이 건립된 이후 금천의 석교가 만들어졌고, 이후 돈화문이 완성된 점을 근거로 돈화문보다 건립 시기가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건축 형식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삼문(三門)이며, 내외5포(內外五包)로 구성된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이다. 가운데 칸은 너비 15척, 좌우 협칸(夾間)은 각 13척의 규모이며, 문의 좌우로 행각(行閣)이 이어져 있다.

진선문은 단순한 출입문 이상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진선문 앞에는 신문고(申聞鼓)를 달아 백성들이 억울한 사연을 직접 호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왕이 죄인을 직접 신문(訊問)하는 추국(推鞫) 장소로도 사용되었으며, 그 외 국정을 처리하는 공간으로도 활용되었다.

역사적 변천으로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연간에 창덕궁을 복원하면서 중건되었다. 1908년(융희 2년)에는 일제의 개입으로 인정전 영역에 정원이 조성되고 자동차 통행이 가능하도록 하면서 진선문이 철거되었다. 이후 1996년부터 복원 작업이 시작되어 1999년에 완료되었다.

진선문의 편액(扁額)은 원래 조선 전기의 문신인 동래군 정난종(鄭蘭宗)이 쓴 것 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소실되었다. 1999년 복원 당시 편액은 서예가 정도준의 글씨로 새로 제작되었다.

관련 역사적 사건으로는,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났을 때 광해군이 서인의 복장을 하고 도주하려다 붙잡혀 진선문 밖에 감금되었으며, 이어 광해군의 세자(폐동궁)도 같은 장소에 감금된 일화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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