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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보경당

창덕궁 보경당(寶慶堂)은 조선 시대 창덕궁 내전(內殿) 영역에 속했던 건물이다. 한자 표기는 寶慶堂이며, '보경'은 '보배로운 경사'를 뜻한다.

개요 및 연혁

보경당은 1405년(태종 5) 창덕궁이 창건될 때 태종의 서별실(西別室)로 처음 지어졌다. 이후 1461년(세조 7) 12월 19일 세조에 의해 공식적으로 '보경당'이라는 당호(堂號)를 부여받았다. 세조는 이곳에서 신료들과 정치를 논하고 술자리를 베풀기도 하였다(『세조실록』 13년 9월 28일). 임진왜란(1592) 때 소실되었다가 1647년(인조 25)에 중건되었고, 이후 광해군·인조·순조 대에도 여러 차례 중건되었다.

위치 및 구조

선정전(宣政殿)의 북서쪽에 위치하였으며, 동쪽으로는 태화당(泰和堂)과 재덕당(在德堂)이 행각을 사이에 두고 연이어 배치되어 있었다. 조선 후기 「동궐도(東闕圖)」에 따르면 정면 6칸, 측면 3칸 규모였으며, 서측 툇간에는 누마루가 설치되어 있었다.

용도 및 역사적 의의

보경당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정치 공간으로 기능하여, 성종 대에는 수렴청정을 하던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신료들을 개별적으로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되었고, 정희왕후 승하 후 성종은 이곳을 거려청(居廬廳)으로 삼아 오랫동안 머물렀다. 숙종 이후에는 후궁의 처소로 전용되었는데, 영조의 생모인 숙빈최씨(淑嬪崔氏)가 이곳에서 영조를 출산하였고(『영조실록』 40년 9월 13일), 순조의 생모인 수빈박씨(綏嬪朴氏)가 이곳에서 승하하였다(『순조실록』 22년 12월 26일). 영조는 보경당에 '탄생당팔십서(誕生堂八十書)'라는 글자를 직접 써서 걸며 자신의 탄생지임을 기념하였다.

소실과 현황

1917년 창덕궁에서 발생한 화재로 대조전(大造殿)·희정당(熙政堂) 등 일곽이 소실될 때 보경당도 함께 소실되었으며, 이후 복원되지 못하였다. 현재는 보경당이 있던 자리에 후원 뜰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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