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경추문(昌德宮 景秋門)은 조선 시대 창덕궁 서쪽 궁장에 설치된 문이다. 한자로는 景秋門이라 표기한다.
경추문은 창덕궁 서쪽 궁장에 있던 세 개의 문 중 하나이다. 남쪽에는 금호문(金虎門)이 있어 창덕궁의 서문 역할을 하였고, 북쪽에는 요금문(曜金門)이 있어 궁궐 나인들이 출입하는 문으로 사용되었다. 경추문은 금호문과 요금문의 중간에 위치하였다.
1655년(효종 6년), 왕대비 장렬왕후(莊烈王后)를 모시기 위해 창덕궁 서쪽에 만수전(萬壽殿)이라는 새로운 전각을 건립하면서 이 문이 함께 만들어졌다. 만수전은 인정전(仁政殿) 서쪽에 있던 옛 흠경각(欽敬閣) 터에 세워졌는데, 이 위치는 금호문과 요금문이 좌우에 있고 바깥에 군영이 있어 소란스러운 곳이었다. 이에 궁궐 바깥에서 이동하는 관리나 군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경추문이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돈녕부사 김육(金堉)이 만수전 건립을 반대한 상소 내용을 통해 이러한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한경지략(漢京識略)』에 따르면, 경추문은 대장이 분부하여 군사를 동원할 때에만 열게 되어 평소에는 항상 닫혀 있었다고 한다. 『승정원일기』 1657년(효종 8년) 3월 25일자 기록에는 궁궐 서쪽 담장과 경추문을 만드는 일이 완료되어 수직군사를 정하는 내용이 실려 있어, 이 시기에 경추문이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1687년(숙종 13년) 9월에 만수전이 화재로 소실되면서 왕대비는 다시 창경궁 통명전으로 거처를 옮겼고, 만수전은 복원되지 못하였다. 만수전이 사라지면서 경추문의 역할도 함께 사라졌으나, 문 자체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경추문의 위치와 형태는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동궐도(東闕圖)」에서 확인할 수 있다.